[시가 있는 공간] 무슨 좋은 일이 있겠지

입력 2016-12-0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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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강을 내다보며

언 강을 내다보며 너를 기다린다

지난가을 첫서리 내릴 때쯤 떠난 황새를 기다린다

마을의 덕장에서는 황태들이 고드름처럼 몸을 부딪치며 울고

무섭게 춥고 긴 내설악의 겨울

나는 매일 얼어붙은 강을 내다보며 너를 기다린다

봄이 되면 오겠지

네가 오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지

시집 『뿔을 적시며』에서

겨울이 깊어간다. 내일이 대설이다.

찬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땅이 얼어붙자 작은 텃새들은 먹이를 찾아 마을 울타리와 가로수에도 깃든다. 예보상으로는 올겨울 엄혹한 추위가 올 것이라고 한다.

내가 한때 일하던 인제 북천변 사무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황새의 일터가 있었다. 어떤 날은 부부가 함께 오고 어떤 날은 혼자 왔다. 황새의 하루라는 게 여간 지루한 게 아니다. 강을 가로지르는 물막이 보에 설치된 어도에서 종일 물속을 노려보다가 가끔 머리를 처박고는 하지만 매번 허탕을 치고는 했다. 새나 사람이나 먹고사는 일이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러다가 찬바람이 불고 강물이 차지면 그는 강을 떠난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기다리기 시작하는데, 이듬해 강이 풀리고 풀이 자라기 시작하는 어느 날 그가 문득 나타나면 오래된 친구를 만나듯 마음이 설레고는 했다.

사는 곳이 위험해지거나 마땅치 않으면 짐승이나 새들은 그곳을 버리고 떠난다. 그거야말로 자연이다. 그래서 철새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국경을 넘고 먼 대양을 건너기도 한다. 집이 없거나 날개를 가진 것들의 슬픔이자 자유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난 땅에 터를 잡고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만들어 살아야 한다. 그곳이 동토든 더렵혀진 곳이든 그 경계를 넘거나 다른 대륙으로 날아갈 수 없는 무리다.

아직도 본인이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자 때문에 시민들은 한 달이 넘도록 따뜻하고 단란한 주말을 집에다 두고 추운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이 땅을 떠날 수 없는 절망과 분노로,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고통과 희망으로 애 어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야말로 온 나라가 광장에 나섰다. 그것은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축제이기도 하고 더러운 피와 요사스러움을 정화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눈발이 날린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도 황새에게 오는 봄을 못 오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광장의 시민들은 그냥 촛불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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