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브렉시트와 유로 2016-치사한 삶, 더러운 축구

입력 2016-06-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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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둘 다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브렉시트’와 ‘유로 2016’ 가운데 나는 후자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보내고 있다. (언론에 실린 전문가들의 분석이 맞는다면) 내 삶에 끼칠 영향은 브렉시트가 훨씬 훨씬 크겠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브렉시트에 관한 뉴스나 해설은 대충 흘려버리고 늦은 밤, 깊은 새벽에 유로 2016 중계를 봐왔다.

“브렉시트는 어떤 변화도 가져 오지 못할 거야. 부자는 계속 부자일 테고, 가난한 사람은 꾸준히 가난할 거고, 우리는 계속 외국인들 탓을 하겠지”라는 한 영국 코미디언의 트윗은 유로 축구에 빠져 있는 내 태도와 맥락이 같다. 내 삶에 아무리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들 내가 맞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브렉시트로 금값이 오르고 돈값이 달라지는 걸 걱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거기다 우리나라 고위 정책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이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나 겉으로는 “브렉시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 하고 있으니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축구, 그것도 세계적인 대회를 지켜보면서 인생을 확인하고 반성하는 게 더 내 정신 안정에 좋다는 생각으로 유로 2016 중계를 지켜보았다.

좀 멋있게 말하란다면 ‘내 머리는 브렉시트를 향해 있으나 가슴은 유로 2016에 있다’고나 할까. 멋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브렉시트를 전후해 사람을 ‘머리’와 ‘가슴’으로 나누는 어법이 유행하고 있음을 참고하시라. 대표적인 게 브렉시트를 주도한 전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에 대한 외국 언론의 논평, “그의 가슴은 EU에 있으나 머리는 권력에 있다”는 것이다. 또 “영국인들은 머리는 EU 잔류에 두면서 가슴은 탈퇴에 뒀다(이성적으로는 잔류하고 싶었지만 ‘승질’이 나서 탈퇴하기로 했다)”는 논평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중성은 인간의 본성이자 인생의 본질이다.

축구에서도 나는 이런 본성과 본질을 확인한다. 이 말을 증명하기 위해 ‘축구는 치사하고 더러운 게임이다’는 명제로 시작하겠다. 결론도 미리 말하겠다. ‘축구는 더러운 경기여서 인생의 축소판이며, 그래서 세계를 열광시키는 유일한 경기가 됐다’이다. 축구가 왜 더러운 경기인가? 페어플레이를 공언하면서 경기를 시작하지만 처음부터 너무나 많은 반칙이 너무나 태연하게 저질러지고, 같은 반칙이라도 심판에 따라서 걸리기도 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카드를 받기도 하고 안 받기도 하는 불공평함 때문이다.

공을 향해 동시에 뛰어오르면서 팔꿈치로 후려갈기기, 내려오면서 무릎으로 허리 찍어대기, 태클하는 척하면서 정강이 걷어차기, 공을 다투면서 스파이크로 발등 찍기, 같이 넘어져 뒹굴면서 등판 짓누르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반칙이 이뤄지는 게 축구판이다. 이중에서도 상대 선수 윗도리를 잡아당겨 넘어뜨려놓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바닥을 하늘로 펴 보이는 세계적 선수들의 위선적 모습은 정말 가관이다. 영상기기의 발달과 중계기술의 발전으로 땀방울과 숨구멍 하나하나 다 보이는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그래서 나는 축구선수들에게 최소한 윗도리는 유니폼 대신 보디페인팅으로 출신국이나 소속팀을 표시하는 게 어떨까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잡고 싶어도 잡을 게 없으니 최소한 몸싸움을 가장한 이런 반칙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아랫도리는 꼭 입는 조건이다.)

심판도 마찬가지. 똑같은 유형의 반칙을 한 번은 봐주고 한 번은 적발하고, 이쪽 편에 내린 판정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음엔 저쪽 편의 경미한 반칙에 무거운 판정을 내리는 모습이라니! 아무리 심한 반칙이라도 자기가 보지 못하면 넘어가고, 분명히 골인데도 노골을 선언해 승패를 뒤집는 심판도 있지 않은가. 간혹 어쩌면 저렇게 조신하게 경기하는 선수가 있나 싶어 지켜보면 이미 옐로카드를 하나 받았기 때문에 퇴장 당할까 봐 조심하는 선수란다!

축구 매니어들이 주장하듯, 축구가 원래 그런 거라면 인생도 원래 그런 거다. 이게 인생의 축소판 아니면 무엇이겠나?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 상대를 짓밟거나 속여서 무엇이든 한 계단 더 올라가려는 게 인생 아닌가? 남이 안 볼 때는 물론 보고 있더라도 기회만 오면 뻔뻔스러운 반칙을 저질러 원하는 걸 차지하는 것, 그걸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건 져도 승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패배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최고의 축구명언이다. 내가 못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의 반칙 때문에, 심판 때문에 졌다고 할 수 있는 축구! 그래서 마음으로라도 불복할 수 있는 축구! 반칙하는 자들은 반칙을 덜 하거나 못 하는 자들에게 이런 정신승리를 안겨 주고 대신 진짜 승리를 가져간다. 이게 지금 보는 우리 삶의 축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7월 11일 새벽(한국 시간)에 벌어질 결승전까지 또 어떤 변고가 있을지 모르지만 16강전이 끝난 현재 유로 2016의 최대 이변은 28일 새벽 영국, 정확히는 잉글랜드가 아이슬랜드에 2대 1로 역전패한 것이다. 잉글랜드의 인구는 영국 전체(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인구 6400만 명의 80%가 넘는 5300만 명이나 아이슬랜드는 고작 33만 명의 소국 중의 소국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 예측되지 못한 것처럼 아이슬랜드의 승리 또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네티즌들은 ‘아이슬랜드가 정의구현을 했다’는 식의, 과장된 표현으로 열광하고 있다. 브렉시트로 세계를 혼란시킨 영국이 미워서라기보다는 약자의 승리에 열광하는 것이리라. 인생에서는 어렵고 어려운 역전승이 실제로 일어난 것에 수많은 정신승리자들이 환호작약(歡呼雀躍)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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