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경제 톡] ‘2600만원 희망고문’ 걸린 우울한 공시생

입력 2016-04-11 17:42 수정 2016-04-12 16:07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나: 아! 선하 어떻게 됐어요?

엄마: 지난번에 면접까지 가서 떨어졌잖아. 11명 중 9명 붙는 거라 합격한 거나 다름없다고 그때 아줌마 엄청나게 좋아했었는데….

나: 선하 올해 서른 아녜요? 또 시험 본데요?

엄마: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니까 포기를 못하겠나봐. 지난달에 필기시험 보고 체력검사 준비하고 있데.

선하는 ‘엄친딸’(엄마 친구 딸)입니다. 키, 몸매, 외모 모든 걸 다 갖췄죠. 사근사근한 성격에 공부까지 잘해 엄마들 모임에선 가장 이상적인 자식상(?)으로 통합니다. 딸들 사이에선 질투의 대상이고요. 그나마 전 나잇대가 달라 비교 대상에서 비켜나 있지만, 동갑내기인 제 동생은 선하 때문에 스트레스 꽤 받았습니다.

그런 선하가 3년째 공시(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졸업 후 2년간 취업준비를 했는데요. 잘 안됐나 봅니다. 원래 머리가 좋으니 금방 붙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거든요. 그런데 선하는 아직도 노량진 공시촌에 있습니다. 지난해 면접에서 낙방한 후 “계속 시험 준비할 거냐”란 아줌마 질문에, 선하는 “이젠 갈 데가 없다”고 했다고 하네요. 저 같아도 미련의 끈을 못 놓을 것 같습니다. 활발한 아이였는데, 의기소침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선하가 여경이 되려는 이유는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은 스스로 사표 쓰지 않으면 60세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공무원 연금이 개혁되긴 했지만, 여전히 일반 기업보다 조건이 좋죠. 상사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도 쓸 수 있습니다.

박봉 역시 옛말입니다. 지난해 공무원 평균연봉은 5600만원(세전)에 달합니다. 위험수당이 많은 경찰과 소방관은 총 급여가 더 많고요. 일반직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좀 적습니다. 가장 월급봉투가 얇은 9급 지방직 공무원도 급식비ㆍ직급보조비ㆍ정근수당 등을 합치면 초임이 2600만∼2700만원 가량 됩니다. 대기업(2015년, 3500만원)보다 적지만 중소기업(2190만원)과 비교하면 훨씬 후하죠.

▲지난 주말(9일)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이 치러졌는데요. 4120명 선발에 22만1900명이 접수했습니다. 사상 최대 인원입니다.(연합뉴스)
▲지난 주말(9일)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이 치러졌는데요. 4120명 선발에 22만1900명이 접수했습니다. 사상 최대 인원입니다.(연합뉴스)

“똑같은 바늘구멍이라면, 차라리 공무원이 낫잖아요.”

예전 공시는 스펙 부족한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공시촌에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청춘들이 수두룩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3만3000명의 취준생 가운데 22만명(35%)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4년(18만5000명, 28%)과 비교하면 1년 만에 20% 가까이 늘었네요.

벚꽃 비가 내리던 지난 주말(9일) 치러진 9급 공채 필기시험에 22만명이 몰렸다 하니, 공시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갑니다.

공무원에 대한 갈망이 너무 큰 탓일까요? 지난주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혐의로 20대 청년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물론 전국이 발칵 뒤집혔죠. 국가 1급 보안시설이 뚫렸으니까요. 황교안 총리도 관계부처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불호령을 내렸죠.

하지만 이 같은 논쟁 속에 ‘공시생’은 없습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을지 한편 이해가 간다. 뉴스 볼 시간도 없는 공시생들은 별 관심도 없겠지만….”

범죄행위를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이해된다’는 청춘들의 목소리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11일) 오후 전해진 ‘정부청사 보안대책 마련에 민간전문가 7명 참여’ 기사보다, ‘공시생 우울증, 일반인 3배’란 헤드라인에 더 눈이 가는 이유입니다.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혐의로 20대 청년이 경찰에 붙잡혔는데요. 그는 왜 범행을 저질렀느냐는 질문에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고 답했습니다.(연합뉴스)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혐의로 20대 청년이 경찰에 붙잡혔는데요. 그는 왜 범행을 저질렀느냐는 질문에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고 답했습니다.(연합뉴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뺑소니까지 추가된 김호중 '논란 목록'…팬들은 과잉보호 [해시태그]
  • 높아지는 대출문턱에 숨이 ‘턱’…신용점수 900점도 돈 빌리기 어렵다 [바늘구멍 대출문]
  • "깜빡했어요" 안 통한다…20일부터 병원·약국 갈 땐 '이것' 꼭 챙겨야 [이슈크래커]
  • 단독 대우건설, 캄보디아 물류 1위 기업과 부동산 개발사업 MOU 맺는다
  • 하이브 "민희진, 투자자 만난 적 없는 것처럼 국민 속여…'어도어 측' 표현 쓰지 말길"
  • 어린이ㆍ전기생활용품 등 80개 품목, KC 인증 없으면 해외직구 금지
  • 단독 위기의 태광그룹, 강정석 변호사 등 검찰‧경찰 출신 줄 영입
  • 막말·갑질보다 더 싫은 최악의 사수는 [데이터클립]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1,771,000
    • +1.89%
    • 이더리움
    • 4,139,000
    • -0.24%
    • 비트코인 캐시
    • 625,500
    • +0.56%
    • 리플
    • 717
    • +0.42%
    • 솔라나
    • 225,700
    • +5.66%
    • 에이다
    • 630
    • +0.8%
    • 이오스
    • 1,110
    • +0.63%
    • 트론
    • 173
    • -2.26%
    • 스텔라루멘
    • 148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86,700
    • +0%
    • 체인링크
    • 19,130
    • +1.32%
    • 샌드박스
    • 601
    • +0.1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