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나

입력 2016-01-2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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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역사가는 승리의 이야기를 쓰지만 작가는 패자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말이다. 사실 거의 모든 문학작품은 성공한 사람이나 행복한 사람들보다는 실패하거나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세계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승자와 패자의 의미는 대단히 넓은 것이기도 하겠으나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진행되어 온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서민층의 삶을 좌절시킨 우리의 경우, 국가가 대량의 패자들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가난은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엄은 오직 가진 것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고 서민들의 힘겨운 삶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근검절약하거나 애써 공부하고 노력하면 보답이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오래전 시대의 이야기가 되었다. 가장 힘든 것은 내남없이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분노하고 좌절하고 끝내는 자신과 가족을 버리는 비극이 셀 수 없이 일어난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미안하지만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문 좀 두드려 달라던 작가는 스스로를 버렸다.

식은 밥이나 이웃에게도 그랬겠지만

자기가 쓴 시나리오에게도 떳떳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주검을 치우는 사람에게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라며

자기 손으로 목숨을 접은 어느 독거노인은

따뜻한 국밥 몇 그릇을 세상에 남겼다.

가난했지만

죽음에게까지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그 소중한 유산을 남겼던 것이다.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주검들이 수줍게 떠올라도

아이들 몇몇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앳된 나이에 퉁퉁 부은 민낯을

죽어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송파 어디선가 월세 살던 세 모녀가

공과금과 마지막 집세를 계산해놓고

한날한시에 세상을 버린 것도

다시는 볼 일이 없더라도

국가와 집주인에게 당당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뭔가에게 굽히기 싫었던 것이다.

졸시 ‘존엄에 대하여’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가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어떤 계층을 대상으로, 혹은 어느 지역을 위주로 어떤 방법을 써야 권력을 잡거나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를테면 거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이다. 불공정한 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불안의 늪에 빠져 있는데 각자 알아서 구명도생하라면 이보다 더 차가운 국가는 없을 것이다.

공자는 “모자람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不患寡而患不均]고 했다. 다시 귄터 그라스의 말로 돌아가 문학이 패자를 기록한다 해도 현실은 늘 문학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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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박재삼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심상 신인상, 백석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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