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2005 메리츠금융 클래식 챔프 최우리, “저 증권회사 다녀요!”

입력 2015-12-18 14:31 수정 2015-12-1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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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리츠금융 클래식 챔피언 최우리. 그는 현재 서울 여의도 소재의 한 증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VIP 고객에게 필드 레슨을 하고 투자를 유지하는 일이다. (오상민 기자 golf5@)
▲2005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리츠금융 클래식 챔피언 최우리. 그는 현재 서울 여의도 소재의 한 증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VIP 고객에게 필드 레슨을 하고 투자를 유지하는 일이다. (오상민 기자 golf5@)

작고 마른 체형의 여성이 필드를 지배했다. 얼굴도 이름도 낯선 그는 거침없는 맹타를 휘두르며 이선화(29ㆍ한화), 문현희(32), 김주미(31), 한희원(37) 등 쟁쟁한 선수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남겼다. 2005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리츠금융 클래식에서 우승한 최우리(31)의 이야기다.

그야말로 신들린 플레이였다. 최우리는 이 대회 마지막 날 버디 6개를 잡는 동안 보기는 한 개로 막았다. 당시 코스는 경기 여주의 솔모로CC였다. 홀마다 그린 주변에는 3m 벙커가 입을 쫙 벌리고 있어 어렵기로 악명 높은 코스다. 역전 우승을 노리던 선수들은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줄줄이 보기를 범하며 자멸했다. 그런 가운데 최우리만이 살아남았다.

‘깜짝 우승’이었다. 다음날 각종 미디어 지면에는 ‘깜짝 우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최우리는 그 우승을 끝으로 더 이상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히 골프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최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얼마만이죠?” 최우리가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10년이 훌쩍 지났다. 첫 우승 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인터뷰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승 후 바로 다음 주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 최우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우승 후 무릎 수술을 했어요. 시합 전부터 많이 아팠는데 진통제 먹으면서 뛰었죠.” 10년이란 세월이 그의 아픔까지 씻어낸 것일까. 아프고 힘들었던 일들을 하나 둘 털어놓았다.

“사실 우승도 기적 같은 일이었죠. 우승 후에 6~7시간이나 수술을 했거든요. 겨울엔 전지훈련도 못 갔고요. 운동을 제대로 못하니까 원형탈모가 생기더라고요. 500원짜리 동전만한 게 3개나 생겨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에게는 우승의 달콤한 기쁨보다 시련의 아픔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무릎 수술을 하니까 팔꿈치가 고장이 나더라고요. 정상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선수 시절 내내 부상으로 시달렸다. 결국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작고 마른 몸으로 남들보다 힘겹게 버텨왔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그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운동은 안 한 거예요?”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2년 동안 TV를 못 봤어요. 몸이 아파 포기했지만 미련이 많았나봐. 골프채를 보기도 싫더라고요.” 그의 솔직한 고백은 계속됐다. “한 2년 정도는 나를 찾는 시간이었어요. 여행도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걸 했어요.”

▲필드는 떠나 새롭게 시작한 일이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서울에서 라운드 후 부산, 울산으로 이동해 또 다시 라운드 후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강행군이다. 업무 중 상당 시간을 운전을 해야 한다. (오상민 기자 golf5@)
▲필드는 떠나 새롭게 시작한 일이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서울에서 라운드 후 부산, 울산으로 이동해 또 다시 라운드 후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강행군이다. 업무 중 상당 시간을 운전을 해야 한다. (오상민 기자 golf5@)

그리고 잠시 뒤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저 증권회사 다녀요.” 명함엔 현대자동차그룹 HMC투자증권 WM추진팀 대리라고 쓰여 있었다. VIP 고객에게 필드 레슨을 하고 투자를 유도하는 역할이란다. 최 프로에게는 제법 잘 어울리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서울에서 라운드하고 부산ㆍ울산 찍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야 하니까요. 사무실 업무도 아는 게 없고. 운동할 땐 학교도 잘 안 나갔는데(웃음).”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적응하는 일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사실은 한 번 그만둔 적이 있어요.” 또 다시 심경고백이다. “2012년 7월 일인에요. 입사 1년 만에 그만두고 유럽으로 떠났죠. 너무 힘들어서 버틸 수가 없었어요. 그땐 그냥 숨어버리고 싶었죠.” 하지만 그는 돌아왔다. “회사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스위스까지 전화를 주셔서 저를 설득하는 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데. ‘내가 어렸구나’ 생각했죠.”

그는 아마추어 골퍼 레슨과 꿈나무 육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레슨은 적성에 맞아요. 대부분 프로들은 아마추어 스윙을 고쳐주려고 하는데 저는 스윙엔 손을 대지 않아요. 모든 사람의 스윙이 예쁠 순 없잖아요. 그 사람이 가진 스윙에 살만 부쳐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쩌면 지금의 업무에 대한 열정과 보람일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사업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경영을 해보고 싶어요. 골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의 도전이요.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무료 레슨도 해주고 싶고요.” 의외의 답변에 귀가 솔깃했다. “재능은 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다 결국 꿈을 접는 아이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 아이들 볼 때마다 속상했는데 제가 가진 재능은 나눠줄 수 있잖아요.” 그가 딴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기자가 알지 못한 최 프로의 이면을 알게 됐다.

기자에게 비춰진 최우리는 작고 마른 체형의 여자 프로골프 선수였다. 통통 튀는 이미지에 다소 철없는 소녀 같은 느낌도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걸까. 아니면 그의 진짜 모습을 이제야 알게 된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골프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필드를 떠날 땐 참으로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지금도 유쾌한 얼굴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10년 뒤, 아니 20년 뒤에도 그 미소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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