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억원 대 기업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현(55) CJ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초 쟁점이 됐던 배임 혐의에는 이 회장 측 주장대로 가중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재판부는 다른 범죄 혐의로 이미 실형 선고 사유가 충분하다고 봤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이원형 부장판사)는 1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법원, "이 회장 배임 혐의, 가중처벌 못해"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이 회장에게 가중처벌법인 특경가법을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판시했다. 이 회장이 일본 건물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CJ일본법인이 보증을 서도록 했지만,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이상 보증액 전부를 범죄혐의 액수로 계산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이 회장은 2007년 일본 도쿄의 팬재팬(Pan Japan)을 통해 빌딩을 구입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CJ그룹 일본 법인이 4700만엔(약 323억 6526억원)의 연대보증을 서도록 했는데, 검찰은 이 액수가 모두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재판부는 "배임 이득액은 피해자 CJ일본법인 보증금액 전체가 아니라, 그 이득액을 산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만을 인정할 수 있을 뿐,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는 무죄"라고 설명했다.
◇회장으로서 막강한 지위 이용…"실형 불가피"
재판부는 그러나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회장이 CJ그룹 회장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해 △251억원의 조세 포탈 △계열사 소유 자금 115억원 횡령 △자신의 개인자산 증식을 위해 CJ일본법인으로 하여금 연대보증하게 한 범죄는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조세포탈이나 재산범죄에서 대규모 자산을 보유한 기업가가 범행이 발각된 후에 행한 피해 회복 조치에 향형상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며 "이를 결정적인 양형요소로 삼기는 어렵다"고도 밝혔다.
이 회장이 내세운 건강 문제도 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 회장 측은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샤르코 마리 투스(Charcot-Marie-Tooth , CMT) 병을 앓고 있어 정상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건강 상태를 참작해 선처해달라고 호소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러한 사정은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2심 판결에 이미 반영된 것이라고 판시하며 "건강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양형요소라기보다는 형의 집행과 관련된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 변호인, "배임혐의 무죄…다시 대법원 갈 것"
이 회장의 변호를 맡은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안정호(47·사법연수원 21기)변호사는 판결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법원에 상고해서 다시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변호사는 특히 재판부가 특경가법을 적용하지 않았는데도 실형을 선고한 부분에 대해 "예상 못한 부분이라 당황스럽다, (재상고를 통해)일본 부동산 배임 혐의는 일반 형법상으로도 무죄라고 다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