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여기에서 거기로

입력 2015-04-0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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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지난해 이맘때 우리 사회에는 세월호가 없었다. 청명, 한식이었던 토, 일요일을 거치고 맞은 4월 7일 월요일은 신문의 날일 뿐이었다. 언론인들에게는 그랬다. 보건의료계 사람들에게는 보건의 날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9일이 지나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4월은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빛나는 꿈의 계절’이 아니요, 접동새 울음 속에 4·19라는 미완의 혁명을 되새기는 달이 아니다. 이제는 그저 세월호의 달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달라지고 나아진 것보다 더 나빠지거나 그대로인 게 많은 것 같다. 눈물과 원망이 커지고, 안전은 여전히 제자리이고, 벼슬을 구하고 맡기는 구조와 행태는 좀 더 음험하고 사악해졌다. 그리고 가라앉은 세월호는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다.

특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제정령(안)’이다. 3월 27일 입법예고된 시행령안은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독립성, 이 두 가지 중요한 목표를 저버렸다. 특별조사위원들이 제안한 시행령안을 묵살한 채 위원회와 위원들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사무처 인력과 예산을 축소했다.

사무처의 주요 직책을 정부 파견 고위 공무원이 맡게 해 조사대상이 될 수 있는 기관의 공무원들이 거꾸로 특조위를 통제할 수 있게 했다. 더욱이 조사업무의 핵심인 조사1과장을 파견된 일반직 공무원이 맡게 한 데다 조사 범위를 ‘성역 없는 진상조사’가 아니라 ‘정부 진상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로 한정했다. 꼬리(시행령)가 몸통(특별법)을 흔드는 격이라는 비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입법예고기간도 문제다. 입법예고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40일(자치법규는 20일) 이상으로 규정돼 있는데, 해수부가 그 기간을 10일로 줄임에 따라 4월 6일로 입법예고가 이미 끝났다. 국민의 권리의무나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입법인 경우 등에는 법제처장과 협의해 예고를 생략하거나 기간을 단축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시행령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입법인가. 시행령안도, 입법예고기간도 납득하기 어렵다. 법제처장과 협의를 했는지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법제처도 문제다.

언론인의 눈에는 특히 더 걸리는 게 있다. 진상규명국 산하 조사3과장의 임무 중 제1항은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언론 보도의 공정성·적정성에 대한 조사’다. 2항과 3항에 ‘이 사건과 관련한 정보통신망 게시물 등에 의한 피해자의 명예훼손 실태에 대한 조사’ ‘관련 자료의 수집 및 보존’이 명시돼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제1항이다. 언론을 어떻게 조사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세월호 사건 이후 언론은 ‘전원 구조’라는 사고 당일의 어이없는 오보와 그 이후의 추정 보도·과열 경쟁, 선정적 기사로 인해 ‘기레기’라는 오명을 새로 얻게 됐다. 언론답지 않은 언론, 기자 같지 않은 기자들에 의해 언론은 신뢰 상실을 자초하면서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정부기구나 다름없는 조직이 언론의 행적을 조사하고 그 죄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지난주는 예수 고난주간과 부활절이었다. 부활미사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마르코복음 16장 1~7절이었다.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세 여인은 무덤의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놀랐다. 그때 흰 옷 입은 청년이 예수의 부활을 알리면서 예수가 갈릴리로 먼저 가니 거기서 만나자는 말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하라고 한다. 갈릴리는 예수가 주요 활동을 한 지역이며 제자들을 고른 곳이다. 33번의 이적 중 24번을 이곳에서 행했다. 갈릴리 거기로 가는 것은 세상을 밝히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활동하는 부활의 의미를 완성하는 일이다.

승객과 시신을 건지는 게 현안이었던 세월호 문제는 이제 선체 자체의 인양이 초점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적극 검토를 표명했지만, 배를 건져올리는 것에 국력과 지혜를 걸어야 한다. 그 배가 거기에서 여기로 오고 시행령 개정을 비롯한 법적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져 진실이 인양돼야만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다른 거기’로 가는 부활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활절을 지나고 맞은 신문의 날에 여기와 거기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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