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하나마나한 성희롱 예방교육?

입력 2014-12-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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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올 한해 대학가는 성희롱에 시달리고 성추행에 휘둘렸다. 특히 힘없는 여대생을 대상으로 그것도 교수가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는 뉴스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대학은 교권 보호를 명분으로 진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결과 여론의 뭇매를 맞는 악순환을 반복하곤 했다. 와중에 해당교수 구속까지 이른 서울대의 경우, 구성원의 성희롱 예방교육 이수율이 20%에도 못 미칠 만큼 저조했다는 사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기사를 보며 1980년대 ‘10대 임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던 미국 상황이 새삼 떠올랐다. 미국에선 10대 임신으로 인해 미혼모가 증가하고, 미혼모는 다시 중고교 자퇴 및 중도 탈락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빈곤층으로 전락한 이들은 국가의 사회복지비용 지출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됨에 따라, 10대 임신의 근절을 위해 다양한 맥락에서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당시는 유럽에서도 10대의 성 개방 풍조가 만연되어 있던 상황이기에, 왜 유독 미국에서만 10대 임신이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지를 놓고 미국의 고민이 깊어가던 때였다. 연구 결과 몇몇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첫째는 초등학교든 대학교든 학교 공교육 현장에서 실시된 성교육의 효과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음이 확인되었다.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에 노출된 10대들 다수의 변명인즉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는 건 모범답안일 뿐, 실제 상황이 오면 교실에서 배운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성교육을 실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10대들은 자신들만의 그릇된 편견에 따라 행동하고 근거 없는 통념을 굳건히 믿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첫 번째 성관계에서는 절대로 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이의 대표적 실례로, 과학적 증거와 객관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임신이란 수차례 성관계를 가진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믿음이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다.

셋째는 유럽의 부모와 미국의 부모가 자녀의 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상이한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곧 유럽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성관계는 자유롭게 선택해도 무방하지만 결과에 대해선 신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행위임을 어린 시절부터 가르쳤다고 한다. 반면 미국의 부모는 사춘기 자녀의 성을 통제와 간섭의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자녀들은 부모의 눈을 피해 성관계를 즐기려 했고 결과는 10대 임신이란 재앙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교육에 더하여 올해부터 성매매 및 가정폭력 예방교육이 필수 이수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사실의 방증일 것이다. 대학도 법 적용의 예외는 아니기에, 차제에 의무를 다하기 위해 4편의 관련 비디오 자료를 꼼꼼히(?) 시청하였다.

비디오 시청 후 첫 소감은 과연 국가가 성희롱 이하 가정폭력까지 예방교육을 통해 최소한 문제를 완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접한 동영상은 첫 화면에 ‘교수용’이란 제목까지 붙어 있었지만, 그 내용은 교수용이란 제목이 부끄러울 만큼 부실했고, 전달 방법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으며, 전반적으로 무성의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비디오를 구입하는데 개당 약 300만원이 소요된다는데는 아연실색할밖에. 전국의 약 300개 대학에서 이들 비디오를 구입한다면 300만원x4개 비디오x300개 대학=36억원에 해당하는 거금이 국고로 귀속되고 있는 셈이다.

차제에 이들 예방교육의 효과를 진지하게 재검토해보길 제안한다. 교육 대상자들이 마지못해 자리만 지키는 교육, 법으로 정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형식만 고수하는 무늬만의 교육은 절대 사절이다. 현장에서 이들 각종 예방교육을 둘러싸고 진지한 비판에서부터 신랄한 조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 일이다. 만일 예방교육 의무화를 계속 고수하고자 한다면, 교육방법의 전면 재검토를 간청한다. 정부가 보급한 예방교육 비디오를 보고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매우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극히 무책임한 판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0대 임신 이슈를 둘러싸고 미국이 경험했던 시행착오와 유럽의 자세는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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