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탄소중립 선도’ 지자체의 도전

입력 2024-03-17 19:07 수정 2024-03-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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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사회경제부 차장

최근 서울 동대문구가 민간 공동주택 제로에너지(ZEB) 건축을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선포했다. 30가구 이상 민간 공동주택 건설업체는 ZEB 5등급(에너지자립률 20~40%)을 충족해야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올해 초로 예정됐던 제도 시행을 1년 유예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갈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동대문구의 ‘마이웨이’는 건물 탄소중립 레이스에서 가뜩이나 뒤처진 한국이 또 시간표를 늦춘 데 대한 ‘위기감’이자 ‘자신감’이기도 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민간 건물 ZEB 5등급 적용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로에너지 시공(단열 강화·신재생 에너지 생산) 부담으로 공사비가 다소 상승하기는 했지만, 용적률 완화에 따른 분양 가구 증가로 업체 수익은 오히려 증가했다.

동대문구, 정부 유예속 ‘제로에너지’ 선포

정부가 약속을 깨고, 1년 유예라는 ‘아량’을 베푼 배경은 뻔했다. 올해 1월 제도 시행을 앞두고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공사비 폭등 군불을 땔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망친다’는 주장이 또다시 고개를 들 때만 해도 온실가스 감축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마당에 설마 싶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민생경제 회복을 이유로 건설업계 손을 들어줬다. 8년 만에 한시적 규제유예 카드를 꺼냈고 개발부담금 감면, 세제지원 등과 함께 민간 공동주택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시행 1년 유예를 끼워 넣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건물 탄소중립 계획표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한국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2018년 대비 40%로 상향하고, 부문별 감축 정책을 내놨다. 국가 전체 탄소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에 달하는 건물의 감축 목표치는 35%. 실행 방안 중 하나인 ‘ZEB 의무화 로드맵’에 따라 공공에서 민간으로, 대형에서 소형으로, 5등급에서 1등급으로 순차 적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공 1000㎡에 이어 500㎡ 이상 건물 신축 시 ZEB 5등급이 의무화됐다. 올해 민간 적용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데, 유예 1년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건물이 한번 지어지면 수십 년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탄소배출 감축 여정에서 엄청난 후퇴라고 봐야 한다.

고금리 여파로 얼어붙은 건설시장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 숨통을 틔워주려는 의도가 분명 컸을 것이다. 경제 상황도 고려해야 하고 반발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결국 선택의 문제다. 세계경제가 인플레이션·고금리에 새파랗게 질린 상황에서도 주요국들은 건물 탄소중립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이미 멀찌감치 앞선 그들도 가속 페달을 밟는데 겨우 첫발을 떼기 시작한 한국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한 전문가는 “기업들은 늘 어려움을 호소하는 주체”라며 “정책을 자주 변경하게 되면 기업들은 목표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적당히 안주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목표를 설정하되 일단 정하면 천재지변이나 쇼크가 아니고서는 변경해서는 안 된다”며 “일본 도쿄도 총량규제 및 배출권거래제 도입까지 이해당사자와 협의를 거치면서 거친 항의도 받고 수렴도 했지만 일단 정해진 후 변경은 없었다”고 했다.

환경규제가 지닌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환경규제는 관련 기술 혁신,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역설적 효과를 낳는다. 1970년 미국 ‘머스키법(1975년 유해가스 배출량을 1971년의 10분의 1로 낮춰야 한다는 것)’ 제정으로 배기가스 정화 기술 개발에 불이 붙었다. 자동차산업 경쟁력도 크게 강화됐다. 1979년 일본은 ‘톱러너 제도(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 가전제품이 나오면 일정 기간을 두고 나머지 제조사들도 그 수준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 도입으로 에너지 절약형 가전제품 보급이 확대됐다. EU의 2030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 조치도 저탄소 차량의 기술혁신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자체에 환경정책 이양도 검토할만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반발을 수반한다. 대의에 동의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밥그릇이 걸리면 돌변하는 게 역사의 반복된 패턴이었다. 그럼에도 의지를 갖고 돌파해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가 있다. 그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이스라엘 성장과 혁신의 주역 시몬 페레스는 독립 초기, 당장 굶어 죽게 생겼다는 비판에도 항공산업을 밀어붙였다. 그의 고독한 결단이 주변 적국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최강국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차라리 환경정책 권한을 지자체에 넘기는 것도 방법이다. 환경 이슈 특성상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규제하기보다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게 낫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다. 책임은 미루면서 권한도 내려놓지 않는 건, 못된 심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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