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훈의 독설(督說)] 검열기관은 분명 존재한다

입력 2020-01-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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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중소기업부 차장

검열. 사전적 의미는 ‘언론, 출판, 보도, 연극, 영화, 우편물 따위의 내용을 사전에 심사해 그 발표를 통제하는 일’이다. 공식적인 검열기관이 없는 2020년 한국에도 버젓이 ‘유사검열’은 이뤄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얘기다.

2월13일이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음란물, 불법도박 사이트 등 유해인터넷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지 1년이 된다. 표면적으로는 ‘불법촬영 동영상’의 유통을 막고 유해 정보에서 국민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였다.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정보의 선택은 사용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명백한 검열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강행했다. 2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방침 취소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동의했다. 어쩔 수 없다는 게 대답이었다. 그러면서도 검열이 아니라는 군색한 ‘강조’를 거듭했다.

1년간의 ‘유해정보 접속차단’은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포털에서 ‘우회접속’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어떤 페이지를 먼저 참고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검색 결과가 쏟아진다. 막아도 볼 사람은 다 본다는 얘기다. 여기에 구글은 최근 접속 차단을 피해 우회접속을 가능케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방통위의 조치가 오히려 ‘악성’ 우회접속 기술만 발전시킨 꼴이 됐다. 심지어 작년 하반기에는 방통위 조치가 기본권 침해라는 내용의 위헌심판까지 제기됐다. 당초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는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방통위가 사실상 검열기관이라며 ‘조롱’당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최근 방통위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웹 불법유해정보 차단을 주요 추진 과제로 소개했다.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음란물과 도박을 막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방통위의 접속제한은 현 정부의 이른바 ‘가짜뉴스’ 대응책과 궤가 같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짜뉴스에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천명했다. 여기에 방통위는 올해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민간 ‘팩트체크’ 기구 설립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언론통제 및 검열 논란을 의식한 듯 설립만 지원하고 기관 운영과 팩트체크 판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말로 선을 지킬 수 있을까. 혈세를 들여서 설립을 지원하는 기관에 정부의 관리감독이나 입김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해당기관이 공정하지 않게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보통신업계 한 전문가는 “기관에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가 내려올 수도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팩트체크 기관에 개입을 할 것이 자명해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편향성 논란이 있는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출신이다. 팩트체크 기관 설립 방침이 공개된 즈음에 임명된 방통위 상임위원(차관급)은 김창룡 인제대 교수였다. 방통위가 가짜뉴스 전담기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방통위는 5세대(5G) 이동통신 산업과 관련해 각종 정책을 만들어야 하고 인터넷 사업자(ISP)와 콘텐츠 제공업체(CP) 간 망이용 대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하는 등 할 일이 태산이다. 가짜뉴스에만 집중할 시기가 아니다.

유해정보 여부는 정부가 정하는 게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용자나 운영자를 처벌하면 된다. 사용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 규제다. 행동에 대한 책임만 있으면 된다. 가짜뉴스 규제도 마찬가지다 .2018년 10월 여당이 만든 ‘허위 조작 정보(가짜뉴스) 유통 방지법안’에서 규정했듯 ‘정부기관 등에서 명백하게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정보’에 ‘가짜’ 낙인이 찍힐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작년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한국이 디지털 독재체제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통위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중심을 잡아야 할 시점이다.

shagger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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