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의 게임으로 보는 세상] 노인과 바다, 그리고 노인과 ‘게임’

입력 2019-12-1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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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멕시코 만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다. 노인은 대부분 혼자 배를 타고 나가곤 했는데,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 지 벌써 84일째였다. 처음 40일간은 어떤 소년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고기를 낚지 못한 채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는 아들이 노인의 배를 타지 못하게 한다. 홀로 바다에 나간 노인은 85일째 되는 날 거대한 청새치와 마주한다. 그는 필사적인 사투를 통해 마침내 청새치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몰려든 상어 떼에 청새치를 다 뜯어 먹히고 그는 청새치뼈 만을 매달고 귀환한다. 달려온 소년은 좌절한 그에게 따뜻한 환영과 위로를 전한다.

왜 갑자기 노인과 바다 이야기냐고? 우리 학회가 분석한 데이터 중 특이한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의 60대와 10대가 5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 넘어 게임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매개로 한 노소간의 소통을 보면서 헤밍웨이가 묘사한 노인과 소년의 친교가 문득 생각났다.

예를 들어 이런 연구 결과가 있다. 게이머 중 e스포츠 같은 게임방송을 시청하는 비율에서 60대는 60%, 10대는 83%에 이른다. 60대 게이머는 과거 콘솔이나 오락실로 불리던 아케이드 게임을 하던 세대인데, 예상외로 청소년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게임방송을 60%나 시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바일 게임의 사용 빈도 역시 60대 게이머는 뒤지지 않는다. 한번에 1시간~3시간 게임을 하는 헤비 게이머가 10대는 44%이지만, 60대도 26%에 이르고 있다. 특히 플랫폼 선택에서 PC 기반의 온라인게임을 하는 60대는 73%에 이른다. 정말 놀라운 결과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노인과 소년이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몬스터 레이드’를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게임은 익명의 공간이기 때문에 노인과 소년은 서로를 모른 채 친구처럼 게임을 할 수도 있다.

하루는 대학생 제자가 몹시 분개하며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게임하다 같은 팀 유저가 너무 예의가 없어 충고했더니 바로 ‘부모님 안부를 묻는(?)’ 거친 말이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더니 ‘초딩이다 어쩔 건데’ 라며 바로 로그아웃해 버렸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게임에서 그 ‘초딩’이 자신을 밝히기 전까지 대학생은 초딩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게임한 것 아닌가.

일본 최대의 통신사인 NTT 우노우라 히로오 전 회장도 나에게 손자와 게임한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주말 내내 손자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격투게임이나, 노부나가의 야망 같은 역사게임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손자가 노부나가의 야망을 하면서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 이름을 다 외우는 것을 보고 정말 게임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그에게는 손자와 게임하는 주말이 항상 기다려지리라.

21세기 현대사회는 고독한 개인의 시대다. 특히 연령과 세대가 달라지면 교류는 상상할 수도 없다. 10대를 비하하는 ‘병아리’나 60대를 지칭하는 ‘틀딱’이라는 거친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 더구나 너무나 이질적인 두 세대의 접점도 없는데 어떻게 60대와 10대가 함께 대화하고 놀이를 하겠는가. 이런 세대의 이질감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게임이다. 게임과 e스포츠는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향유하는 공통의 문화로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과 소년은 고기잡이라는 공통의 놀이를 통해 공감하고,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 나간다. ‘순간 노인은 새로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았다. 자기 자신과 바다를 상대로만 말을 하다가 진짜로 얘기를 나눌 상대(소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말이다(소설 본문중)’

누가 아는가 20년후에 ‘고기잡이’가 아닌 게임을 매개로 한, ‘노인과 게임’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한국에서 나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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