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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경제] 30년 전 워크맨이 수백만 원? "디지털에 없는 감성 숨어 있죠"

입력 2019-09-20 18:21 수정 2019-09-20 18:55

'워크맨 덕후'가 말하는 레트로 이야기

[덕후의 경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건강한 덕후들을 통해 해당 산업을 조망하는 코너입니다. 덕질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더불어 ‘덕후’의 삶도 전하겠습니다. 주위에 소개하고 싶은 덕후가 있다면 언제든지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워크맨 덕후' 송재훈 씨는 네이버카페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의 운영자다. 그는 레트로 문화를 혼자만이 아닌 세상밖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카듣사' 카페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워크맨 덕후' 송재훈 씨는 네이버카페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의 운영자다. 그는 레트로 문화를 혼자만이 아닌 세상밖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카듣사' 카페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이하 카듣사) 카페에 있는 콘텐츠만으로도 카세트와 관련된 하나의 인터넷 역사박물관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비록 온라인상에서의 역사박물관에 머물러 있지만, 뜻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카세트 박물관도 개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0~90년대 라디오에서 프랭크 퍼셀(Frank Pourcel)의 '메르시, 쉐리'(Merci, Cherie)와 함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멘트가 시작되면, 전국 곳곳에서 라디오를 청취하는 사람들이 녹음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다.

녹음까지 가능해 LP판에서 한 단계 진화한 카세트테이프리코더, 일명 '워크맨'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내가 좋아한 '오빠', 혹은 '누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스마트폰 하나로 라디오도 들을 수 있고, TV도 시청할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은 진화했지만, 감성은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레트로'라 부른다.

'레트로'는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의 준말. 과거의 추억이나 전통을 그리워해 그것을 본뜨려고 하는 성향을 말한다.

'덕후의 경제'는 레트로 문화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워크맨 덕후'이자 '카세트테이프 덕후' 송재훈 씨를 만났다.

▲2016년 10월 개설된 카페 '카세트를 듣는 사람들'은 3년새 7000명이 넘는 가입자가 몰렸다. 이제는 레트로를 대표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다. (출처=네이버카페 '카세트를 듣는 사람들' 캡처)
▲2016년 10월 개설된 카페 '카세트를 듣는 사람들'은 3년새 7000명이 넘는 가입자가 몰렸다. 이제는 레트로를 대표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다. (출처=네이버카페 '카세트를 듣는 사람들' 캡처)

◇'카듣사' 카페, 소문만으로 회원 수 7000명= 송재훈 씨의 레트로 사랑은 우연찮은 계기로 시작됐다.

학창시절 '워크맨'은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다. 워크맨을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기에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시절의 아쉬움과 향수가 가득했다. 경제 활동을 하면서 그는 이제야 워크맨을 가질 수 있었고, 고장난 워크맨을 사서 스스로 고치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됐다.

그는 이런 취미 활동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일상생활에서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네이버 카페 '카듣사'였다. 2016년 10월 29일 처음 개설한 '카듣사' 카페는 3년이 지난 현재 가입자 수가 7200여 명에 달한다.

"예전 추억의 기기나 음반들이 결코 개인 혼자만의 추억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세상 밖으로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일상생활도 함께하고 싶었어요. LP, 워크맨, CD플레이어, MD, MP3기기 등과 음반들이 후대에도 잊히지 않도록 관련 정보를 게시해 공유하는 목적도 있죠. 점점 이런 카페 목적에 따라 공감대를 갖는 사람들이 지속해서 가입하다 보니 어느새 카페가 이렇게 커진 것 같아요."

사실 '카듣사' 카페 개설 초기만 해도 과거에 대한 추억을 찾고자 하는 30~40대가 주 연령대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레트로 문화가 부각되면서 호기심에 의한 10~20대 회원의 가입이 본격적으로 늘어났고, 지금은 전 연령대에 걸쳐서 다양한 이들이 활동하고 있다.

'카듣사'에서는 지난 3년간 회원들 간 아날로그 기기와 음반을 즐기고 공유하며 친목 도모를 위한 활동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카듣사' 카페에 올라온 콘텐츠 자료만으로도 세계 최대 규모의 카세트 관련 자료가 수집돼 있다고 송재훈 씨는 자부했다.

그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카페 운영진과 협의해 카세트 박람회를 열거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카세트 박물관 개설도 꿈꾸고 있다.

▲송 씨의 방 한 켠은 워크맨과 관련 부품들을 한 데 모은 장식장이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그의 소중한 보물창고다. (사진제공=송재훈)
▲송 씨의 방 한 켠은 워크맨과 관련 부품들을 한 데 모은 장식장이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그의 소중한 보물창고다. (사진제공=송재훈)

◇희귀템은 고장나도 100만 원에 거래…급격한 가격 상승= '워크맨(walkman)'은 사실 일본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플레이어 브랜드다.

소니는 1979년 세계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워크맨'을 발매했고, 이후 파나소닉(Panasonic), 산요(SANYO), 아이와(AIWA) 등 경쟁사가 속속 시장에 가세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이 '마이마이(mymy)', LG는 '아하(AHA)', 대우는 '요요(yoyo)'라는 브랜드로 80~90년대 시장에서 경쟁을 펼쳤으나 미디어가 필요없는 MP3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2000년대 들어 생산이 전면 중단됐다.

다양한 회사에서 수많은 제품이 쏟아져나왔지만, 소비자들은 제조사에 관계없이 모든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흔히 '워크맨'이라고 부른다. 폭발적인 인기 때문에 제품 브랜드명이 보편적으로 쓰이는 일반명사가 되어버린 셈이다.

송재훈 씨는 2016년부터 2년간 본격적으로 각종 워크맨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워크맨의 몸값은 한창 워크맨의 인기가 높았던 80~90년대에 비해 껑충 뛰었다. 대다수가 단종되어 이제 구할 수 없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레트로 열풍도 몸값 상승에 한 몫을 했다.

"워크맨은 어떤 모델을 수집하느냐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에요. 저는 주로 음질이 좋고 희귀한 워크맨을 수집했고, 작동품이 아닌 고장난 상태의 기기들이었죠. 일본, 중국, 미국, 유럽 등 판매 사이트를 통해 워크맨을 찾아다녔어요.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모델은 고장나도 보통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이상에 거래되요. 이렇게 몇 년간 수집한 워크맨만 300여 대 이상이고, 카세트테이프도 600개 이상을 모았어요. 아마 수천만 원은 쓴 것 같습니다."

많은 돈을 썼지만, 그는 마냥 뿌듯하다. 보통 취미와 관련된 물품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쓰레기로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이기 때문이다. 송재훈 씨에게 이렇게 모은 워크맨들은 보물이었고, 그의 방 한 면을 차지한 장식장은 보물창고였다.

▲송 씨가 소장한 워크맨 중 가장 비싼 소니 'DD9'(왼쪽)과 아이와 'PX1000'. 명기로 꼽히는 이들 제품은 최근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사진제공=송재훈)
▲송 씨가 소장한 워크맨 중 가장 비싼 소니 'DD9'(왼쪽)과 아이와 'PX1000'. 명기로 꼽히는 이들 제품은 최근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사진제공=송재훈)

그렇다면 그가 소지한 제품 중 가장 비싼 제품은 무엇일까? 송재훈 씨는 "워크맨 중에 명기로 불리는 소니 'DD9'과 아이와 'PX1000' 모델의 경우 1대당 100만 원이 넘는 금액에 거래된다. 이베이에서는 200만 원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1989년 출시된 소니 'DD9'은 DD(다이렉트드라이브) 쿼츠 모터를 채택한 고급 기종이다. 맑고 부드러운 베이스 음색으로 오디오급 음질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DD9'은 워크맨계의 대표 명기로 꼽힌다.

1991년 아이와 창립 40주년 기념모델로 탄생한 'PX1000'은 출시 후 당대 전성기 워크맨들을 모두 평정한 기기로 유명하다. 아이와가 남긴 최고의 명기이자, 역대 워크맨 사상 손에 꼽히는 명기라고 한다. 당시 보기 어려웠던 넓은 액정화면에 그래픽이퀄라이저 레벨메터가 움직이는 모습이 인기 요소다.

▲송재훈 씨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아이와 'JX707'. 그는 "좋아하는 기기인 많은 같은 제품이라도 많이 소유하고 있다"며 "같은 모델이라도 기기마다 소리가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송재훈)
▲송재훈 씨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아이와 'JX707'. 그는 "좋아하는 기기인 많은 같은 제품이라도 많이 소유하고 있다"며 "같은 모델이라도 기기마다 소리가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송재훈)

이름난 명기를 소장하고 있지만, 송재훈 씨만의 1순위는 따로 있다. 그가 가장 애장하는 기기는 바로 아이와 'JX707'. 아이와 'JX707' 역시 워크맨계 명기로 유명한 제품이지만, 이름값에서는 'DD9'과 'PX1000'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JX707'이 절대 저렴한 제품이 아니다. 다소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고장난 기기는 10만 원 이상, 작동되는 기기는 20만~70만 원 수준에 거래된다.

그는 "아무리 좋은 명기라도 자기 듣는 귀에 안 맞다면 명기가 아니다"라며 "'JX707'은 강력한 소리와 더 깊은 저음을 청취하게 해주는 'DSL 기능'을 켰을 때 오디오의 배음(倍音)을 듣는 것 같다. 이 기기야 말로 내게 최고의 명기"라고 강조했다.

송재훈 씨는 'JX707' 모델은 10대가 넘게 소유하고 있다. 그는 "같은 기기라도 음질이 조금씩 다르고, 좋아하는 기기는 같은 모델도 더 모으게 된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도 수천만 원이나 되는 비용이 마냥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끔 워크맨을 수집한 비용으로 금을 모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아주 잠시였고요. 취미로 얻은 기쁨이 더 크기에 후회하진 않습니다."

▲송재훈 씨는 마음에 드는 워크맨은 여러 대씩 수집했다. 동일한 기기라도 음질이 조금씩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진제공=송재훈)
▲송재훈 씨는 마음에 드는 워크맨은 여러 대씩 수집했다. 동일한 기기라도 음질이 조금씩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진제공=송재훈)

◇"워크맨마다 손길이 갔기에 더 소중하죠"= 송재훈 씨가 수집한 워크맨들은 세월로 인해 대부분 동작하지 않았고, 그는 이렇게 고장난 워크맨을 스스로 수리하기 시작했다.

워크맨마다 일일이 만져보고 학습하면서 자가수리하는 방법은 홀로 터득했지만, 완벽하게 수리하기는 쉽지 않았던 게 사실. 특히 한 대의 워크맨을 수리하기 위해 같은 모델 2~3대를 구입, 부품을 확보해 수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작동하는 그 순간. 고장난 워크맨이 수십 년 만에 깨어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들려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게 송 씨의 설명이다.

"워크맨은 대부분 30여 년이 지났지만, 수리만 잘 한다면 새 것같은 음질을 그대로 들려줍니다. 그 음색은 디지털 음원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무언가 다른 감성이 있죠. 이런 아날로그 감성을 직접 접해본다면, 누구라도 바쁜 일상 속에서 편안한 휴식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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