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한국이 외환위기(IMF)로 휘청이던 당시 국내 중소기업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심한 이스라엘 기업이 있다. 바로 세계 3대 절삭공구회사 중 하나인 ‘이스카(ISCAR)그룹’이다. 한국과 이스라엘 기업 간 융화가 이미 1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카그룹은 1998년 금속 절삭가공 전문업체인 대구텍을 인수했다. 이후 경제·정치·사회적으로 유사한 듯 보이지만, 서로 다른 기업 생태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를 진두지휘한 일란 게리, 모세 샤론 등 두 명의 대구텍 전임 사장을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의 테펜(Tefen) 산업공원에 위치한 이스카그룹 본사에서 만났다. 지난 10년간 이스라엘과 한국을 넘나든 그들은 양국의 중소·벤처기업 환경을 묻기에는 적임자였다.
◇“벤처·창업기업과 같은 새로운 가치 창출에 고민”
몇년 전 ‘투자의 귀재’ 워런버핏이 한국의 중소기업 ‘대구텍’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구텍이 워런버핏의 지갑을 열 만큼 매력적인 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은 한국(대구텍)의 뛰어난 제조기술과 이스라엘(이스카그룹)의 유연한 사고 및 적극적인 연구개발(R&D) 지원이라는 두 기업 간 결합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스카그룹은 R&D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수십억원을 R&D에 과감히 투자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대구텍 인수 후 첫 사장을 맡았던 게리 이스카그룹 부사장은 “매년 (이스카그룹) 예산의 6% 정도를 투자할 정도로 R&D는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직원들과 함께 아침마다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How to creative value)’에 대한 사고(Mindset)를 함께 되새겨 본다”고 강조했다.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직원들의 심리적 공감대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R&D와 가치 창출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란 게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샤론 전 대구텍 사장도 “R&D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과 신상품”이라며 “R&D는 더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고객의 요구를 충분히 파악하고, 그것을 충족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구텍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촉진제가 됐다. 게리 부사장은 “대구텍 인수 당시 10%에 불과했던 해외사업 비중이 현재 (사업의) 75%로 껑충 뛰었다”며 “이제 지방의 작은 업체가 아니라 50여개국의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피력했다.
한편, 샤론 전 사장은 한류 열풍 등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자리잡는 최근 현상의 주요 배경으로 ‘한국 산업의 발전’을 꼽았다. 그는 “K-팝과 한국 음식들이 세계화되고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산업이 번창했기 때문”이라며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이 15년 사이에 너무 달라졌고,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졌다. 대구텍도 지방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보면 한국 산업이 얼마만큼 발전했는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스카그룹과 대구텍과 같은 제조업종은 배, 차 등의 산업에 적용되기 때문에 광범위하다”며 “앞으로 고객의 행복과 가치창출 목표 달성 여부가 성공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韓, 수직적 조직구조 탈피해야”
이스라엘의 벤처·창업기업을 논할 때 ‘사람’의 중요성은 항상 강조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앞에서 과감해지는 이스라엘인의 성향이 벤처·창업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스카그룹 역시 ‘사람’을 중시하고 있다. 임원과 직원간 벽을 허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게리 부사장은 “이스카그룹은 평등 문화를 추구하는 만큼, 수직적인 상명하복 체계는 없다”며 “신입사원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사장이 직접 가서 해결해 주기도 한다. 대구텍도 이 같은 문화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샤론 전 사장은 “400~500명의 직원들이 모두 같이 아침을 먹는다. 식사 시간에는 스포츠, 취미 등 업무 외적인 얘기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다”며 부연했다. 이어 그는 현재 한국인인 한현준 사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넘긴 것도 이러한 조직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샤론 전 사장은 “한 사장은 이스카그룹과 모기업인 IMC그룹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며 “사업적 역량은 물론, 이러한 기업문화를 계속 이끌어 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겼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한국 중소기업인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한국 생활의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