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로버트 D. 카플란, ‘21세기 국제정치와 투키디데스’

입력 2019-08-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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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는 과학이라기보다 영구적 위기관리

대책도 없이 정면 충돌로 달려가는 위정자들을 보면서, ‘외교를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는 시대다. 국제정치에 대해 충분한 지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엉겁결에 정상에 서게 되고, 그 결과로 국민이 참으로 큰 비용을 치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에 꼭 맞는 책을 소개한다.

로버트 D. 카플란의 ‘21세기 국제정치와 투키디데스’는 전쟁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국제정치학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상아탑 출신이 아니라 특파원으로 25년간 유럽, 발칸반도 그리고 중동지역에서 보냈다. 책 속의 인간이 아니라 현실 속의 인간이 실제로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변덕스러울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한 인물이다.

저자의 주장은 막연한 기대감과 상대방의 선의에 기대어서 뭔가를 이루려는 이 시대의 지도자와 그를 지지하는 국민에게 큰 각성을 요구한다. 그가 현장을 누비면서 체득한 것은 결코 이상주의자나 낙관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실주의자로서의 그의 면모는 서문에 단호하게 그려져 있다. “외교정책은 종종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나의 비관주의와 회의주의는 적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가진 세계관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관계에 대한 비관주의와 회의주의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미국 헌법과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결코 인간에 대해 낙관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인간은 칙칙함과 어두컴컴함 그 자체다.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매디슨은 “인간은 너무도 구제 불능이므로 유일한 해결책은 야심을 야심으로 견제하도록 하고, 사익을 사익으로 견제하도록 하는 것뿐이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그는 “만약 인간이 천사라면 어떤 정부도 필요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미국의 삼권분립은 칙칙한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마련되었다.

이런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얼마나 속고 속이는 것의 연속이겠는가! 순진하게 저 양반들이 비핵화를 해 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애당초 틀릴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이 책은 국제관계에서 결정적인 교훈이 될 수 있는 대표적인 고전들을 저자의 시각에서 제시하고 있다. 11개 장은 처칠의 ‘강의 전쟁’, 리비우스의 ‘포에니 전쟁’, 손자의 ‘손자병법’,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마키아벨리의 저서들 등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외교정책의 위기를 전투로 비유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일본과 전투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랏일을 이끄는 사람들이 그런 절박함과 위기의식을 갖고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외교정책은 종종 폭력적이고 종잡을 수 없이 변화하는 해외 상황, 그리고 문화적 차이에 의해 더욱 복잡해지는 사태들을 파악하기 위해 순전히 직감에 자주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외교정책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영구적인 위기관리의 기술이 될 것이다.”

일찍이 처칠은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와 달리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행동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역사가 살루스티우스는 로마 부침의 궤적에서 “번영이 가져오기 쉬운 악덕은 방종과 자만이다”는 점을 강조한 바가 있다. 오랫동안 성장세를 누려온 공동체는 자칫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읽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4장 손자와 투키디데스일 것이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아테네의 동맹 권유를 벗어난 미틸레네 사람들의 비극은 잘 알려진 사례다. 유명한 ‘밀로스의 대화’에는 “강한 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약한 자는 자신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을 감내할 뿐이다”라는 명언이 등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고전이 제공하는 지혜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공병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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