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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시각] 내 안의 원자 하나하나를 연소시키며 산다는 것

시인, 인문학 저술가

고백하자면, 몇 년 동안 행복에 대해 궁리했습니다. 아침엔 도와 죽음을 궁리하고, 저녁엔 피고 지는 것과 행복에 대해 사유했습니다. 과연 행복이란 뭘까요?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요? 분명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던 듯한데,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영원이나 무한이 그렇듯이 행복은 그 실체를 손으로 쥐고 감촉할 수 없는 추상성과 비밀의 영역에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내면에 웅크린 불행은 외부의 불행에 대한 반향의 결과이겠지요. 많은 불행이 잘못된 사회에서 오는 감염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죠. 젊었을 땐 백수로 떠돌았기에 삶이 내내 누추했어요. 남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해서 불행하다는 생각에 자주 빠졌지요. 남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니 불행했습니다. 가난이 불행의 유전인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지만 어쩐지 몹시 불행했어요. 꿈이 꺾이고 욕망이 좌절된 건 모두 가난 탓이라고 단정했습니다만, 세월 지난 뒤 돌이켜보니 가난이 꼭 불행의 원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이상하게도 불행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 듯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행복의 덧없음 때문이었을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대한 감수성이 더 잘 발달하고, 그것이 어느덧 내면 기질로 고착되었다는 사실이지요. 우리를 불행으로 내몬 것은 부재와 상실의 실감이 여러 겹으로 누적된 탓이 아닐까요? 돈이 없어 접었던 꿈들, 배고픔, 죽음과 이별, 나를 스쳐간 그 많은 기회들…. 하지만 불행이 나를 시인으로 키웠어요. 행복했더라면 시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요. 불행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불행을 겪는 가운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도 커졌어요. 불행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당신이 겪은 불운과 불행에 주눅이 들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쓴맛을 아는 혀가 단맛의 달콤함에 더 예민해지는 법이지요. 혁명 직전에 희망이 부풀고, 혁명의 달콤함이 최대치에 이릅니다. 불행은 끈덕지고 길지만, 행복은 번개와 같이 찰나를 스치고 지나가지요. 행복의 찰나는 너무 짧아서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주 놓치곤 했는지도 모릅니다.

행복의 황홀경 속에는 미량의 슬픔이 녹아 있어요. 어떤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슬픔은 큽니다. 초목은 시들고, 사람은 청춘의 빛나는 정점을 찍은 뒤 쇠잔해지다가 죽습니다. 어떤 사랑도, 생명도 영원하지는 않아요. 한 번 온 것은 가고, 간 것은 돌아오지 않아요. 우리에게 좋았던 날은 사라지고, 영원할 것 같던 젊음도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하나씩 떠나고, 남은 것은 쓰디쓴 회한과 안타까움, 상실과 부재의 고통, 사라진 것에 대한 서글픈 그리움과 혼자 남은 자의 뼛속까지 사무치는 고독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요?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리라./마르고 푸석푸석해져 숨 막혀 죽기보다는/내 생명의 불꽃을/찬란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완전히 불태우리라./활기 없이 영원히 회전하는 행성이 되기보다는/내 안의 원자 하나하나까지/밝은 빛으로 연소되는/장엄한 별똥별이 되리라./인간의 본분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살아가는 것/나는 단지 생을 연장하느라/나의 날들을 허비하지는 않으리라./내게 주어진 시간을 쓰리라.”(잭 런던의 시 ‘먼지가 되기보다는 재가 되리라’)

혹시 ‘강철 군화’라는 소설로 유명한 잭 런던(1876~1916)을 아시나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엔 선원, 청소부, 접시닦이, 통조림 공장 직공, 금광 광부, 굴 도둑 등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습니다. 젊은 시절 부랑과 고된 육체노동을 하며 떠돌았으니, 유복하게 살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어느 날 동네 도서관에서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엄청난 책들을 읽어 치웠지요. 27세에 밑바닥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야성을 그린 장편소설을 써서 작가가 되었지요. 안타깝게도 40세의 나이로 ‘장엄한 별똥별’로 사라졌습니다. 알코올 중독과 싸우는 가운데 50여 권의 책을 쓰고, 수백 편의 단편소설과 회고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짧고 불운한 인생을 불꽃같이 맹렬한 기세로 살았어요. 장엄하게 산다는 것은 시련이나 고난 없이 무난하게 사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의 원자 하나하나까지/밝은 빛으로 연소”시키며 사는 것, 생명의 불꽃을 불태우며 사는 것! 그렇게 살 때 불운이나 불행도 불꽃과 함께 타서 사라집니다. 그런 생은 이미 행복과 불행의 분별을 넘어서겠지요. 단 한 번 주어지는 생을 먼지처럼 부유하다가 슬그머니 죽는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을까요? 자신을 연소시키며 살겠다는 결기가 있다면 웬만한 불행 따위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겠지요.

우리에겐 행복을 꿈꿀 권리와 함께 행복할 의무도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다 행복을 거머쥐려는 열망 때문이 아닐까요? 행복은 잉여 가치가 아니라 필요 가치이지요. 사실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도 없습니다. 다만 둘은 불과 얼음 같은 관계이겠지요. 많은 이들이 불행을 회피한 결과로써 행복이 주어지는 게 아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불행을 회피하는 데 제 시간과 돈을 다 써버려서 정작 행복을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능 상태에 빠집니다.

기어코 가려는 행복의 섬에는 불행의 나라를 버리고 떠나온 망명자들이 삽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망명자들은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을 앓느라 주어진 행복마저 누리지 못합니다. 많은 이들이 불행한 것은 행복에 대한 감수성이 모자란 탓입니다. 불행한 이들은 결핍 탓에 불행해지는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 결핍을 채우려고 죽자 살자 매달린다는 게 그 증거지요. 복어 독은 사람 목숨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이지만 일류 요리사는 복어 회의 풍미를 돋우려고 극미량의 독을 남긴답니다. 마찬가지로 약간의 우울감이 곁들여야 행복의 양감이 분명해집니다. 완벽한 행복이란 차라리 불행이 아닐까요? 행복을 실감하려고 일부러 우울해질 필요는 없겠지만 부족한 듯한 행복을 살펴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어린 시절 앓았던 감기 같이 가벼운 병, 며칠 집을 비웠던 어머니의 귀환, 어린 이마를 짚던 어머니 손의 차디찬 감촉, 어린 살구나무 가지마다 찬란하게 피었던 분홍색 꽃, 뽕나무 가지에 익어 다닥다닥 매달린 오디, 담장 밑에 돋는 작약의 움, 나날이 푸르러지는 버드나무, 앞산에서 한가로이 우는 뻐꾹새 울음소리조차도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불행하고, 누군가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처지이면서도 자기가 불행하다고 믿는 사람은 불행해 보이고, 행복하다고 웃는 사람은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그가 처한 현실의 차이가 만드는 게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같은 현실 속에서 불행의 냄새를 맡는 자는 불행하고, 행복의 기미를 찾아서 그걸 향유하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밝은 태양이 공중에서 빛나고, 그 아래 갖가지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며, 가끔은 비 온 뒤 무지개도 뜨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나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디 마음의 눌린 데를 펴고 더 밝고 더 크게 웃기를!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더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당신이 행복하게 웃는다면 나도 비로소 행복하게 웃을 수가 있습니다.

장석주 시인, 인문학 저술가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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