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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의 Aim High]기회는 계속 평등할 것입니다

‘시험 볼 기회는 3년에 단 한번, 총 다섯 단계를 거쳐야하며 경쟁률은 2000~3000대 1. 대신 합격만 하면 평생이 보장된다.’

불수능에 데이고 헬논술에 뺨 맞은 수험생들이 눈물을 삼키던 지난 주말,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위엄’이라는 수년전 게시물이 새삼 회자 됐다.

과거시험은 인근 100리에 드문 수재라해도 30년을 준비해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으니 그에 비하면 불수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위로 아닌 위로다. 박현순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 과거시험 응시자는 평균 10만명 이상 이었으며, 이들 중 오직 33명에게만 급제의 영광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험 외에도 여러 입신양명의 길이 있음은 다르지 않을 터, 그럼에도 온 집안이 도련님의 글공부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던 까닭은 뭘까. 과거시험에 실패하면 역모를 꾀하지 않았는데도 멸문지화급 재앙이 닥쳐왔기 때문이다.

후기에 이르러 문란해지기 전까지 조선은 흔히 신분간의 이동이 차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이야기다. 예컨대 집안에 정승·판서가 나면 자손만대 편히 먹고살 수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 조선의 신분제도는 4대에 이르도록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지 못하면 양반자격이 박탈되는 시스템이었다. 증조부와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마저 실패했다면 도련님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반대로 흙수저로 태어났다해서 죽을 때까지 마당쇠나 하라는 법도 없었다. 장영실의 사례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과거를 통해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는 이가 꽤 있었다. 박현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순조와 헌종 때 치러진 과거 시험은 평민의 합격률이 각각 54%와 50.9%로 절반을 넘었다. 하루아침에 대감님과 돌쇠가 서로 자리를 바꾸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났던 셈이다.

이쯤 되니 여염집 아들은 과장을 좀 보태 옹알이만 시작해도 글공부에 내몰렸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공부는 보통 다섯 살부터 시작됐는데, 합격자 평균 연령이 36.4세인 점에 비춰보면 30년 이상을 공부해야 겨우 합격할 수 있었던 셈이다. 요즘은 똑같이 다섯 살에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했다고 쳐도 14년 뒤면 입시공부가 끝나니 조선시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도 사서삼경만 달달 외우면 되니 학습량이 지금보다 적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 또한 오산. 사서삼경은 지금으로 치면 국영수 교과서 정도고 사략, 통감에 과문과 초집까지 통달해야 겨우 기본학습을 마친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모조리 외국어인 한자로 써있으니 다섯 살 때부터 원서를 읽어야 했던 셈.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를 했다는 율곡 이이 선생의 ‘구도장원’ 일화는 마치 수석합격이 흔한 일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 장원을 따낸 시험은 13살 때 치른 초시(생원·진사)며, 명실상부한 장원급제인 대과 전시를 제패한 것은 16년 뒤인 29살이 되어서였다. 레전드급 천재라는 율곡 선생도 다섯 살 때 공부를 시작했다면 장원급제까지 24년이나 걸렸던 것.

갈 길이 구만리인 학생들이 무덤 속 옛일을 다시 꺼낸 것은 고단했던 수험생활의 결과물을 앞둔 두려움을 떨칠 위안거리가 필요해서 일지 모른다. 단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만능주의가 수백년째 이어지는 현실에 화가 났기 때문 일 수도 있다. 타고난 두뇌 말고 동물같은 운동능력, 남다른 외모도 똑같은 유전자의 힘이자 노력의 대가인데 왜 유독 공부만 대접받는지가 불만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회 균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지금, 오히려 대학입시는 개천에 사는 용도 날아오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몇 안남은 방법일수 있다. 무소불위 독재정권의 딸아들도 완력으로 대입시험 고득점을 강도질 했다는 경우는 아직 못 봤다. 돈이면 뭐든지 살 수 있는 재벌 2~3세라도 재수·삼수를 거치고서야 명문대에 입학한 사례가 드물지 않다. 교무부장의 쌍둥이 자매도, 국정농단녀의 승마천재 딸도 허점을 찾지 못해 뒷구멍을 파야 했던 철벽이 바로 대학입학시험이다. 수능만이 정답이며 수능 잘 보면 출세 길을 보장하라는 헛소리가 아니라, 주경야독이 고액과외를 발라버릴 기회를 열어두자는 뜻이다. 돈과 권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오직 실력으로 끝장 보는 무대가 헬조선에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기회만 평등한 것으로는 부족하다. 과정은 공정해야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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