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경제 체질개선 위한 최저임금 인상?

입력 2018-08-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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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질 개선이 회자되고 있다. 고용 사정이 급격히 악화한 것을 계기로 과거 정부 탓이라는 여당의 주장과 “왜 이승만까지 탓하지 않느냐”는 야당 인사의 퉁명스러운 반박을 보며 정치권 소식에 드물게 미소 짓게 된다. 경제 체질을 사람에 비유해 보자. 감기를 달고 살거나 쉽게 배탈이 나는 사람이 있다.

체질이 개선되면 감기나 배탈로 고생하는 일이 드물어 일상생활이 훨씬 편안해진다.

체질이 우량한 경제는 여건이 좀 나빠져도 경제 충격이 덜하다. 예를 들어 국내 수요가 부족할 때 수출이 잘되어 전체 경제 상황이 큰 어려움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즉 체질이 강한 경제는 충격이 크지 않거나,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데 반해 체질이 부실한 경제는 작은 충격도 전체로 쉽게 확산된다.

어떻게 하면 경제의 체질이 강해질 수 있을까? 개인,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가 튼실하면 된다. 우량 체질의 기업은 좋은 제품만 만든다. 매출이 떨어져도 재무 상황이 여유가 있거나 빚이 많지 않아 이자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런 기업들을 갖는 방법은 ‘옥석(玉石) 가리기’를 통해서다. 시장에서 소비자들, 그 회사의 거래 기업들이, 자금을 대여해주는 금융회사들이 이런 역할을 한다. 제품이 안 팔리고, 자금 조달을 못하는 기업들이 퇴출하면 기업계의 체질은 건실해진다.

정부의 정책이 옥석 가리기 수단이 되는 경우가 있다. 환율은 수출품의 해외시장 가격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상품의 품질 제고를 통해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정부에 읍소(泣訴)해서 환율의 저평가를 주문하고 이에 의존해 수출하려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수년간 원화 환율이 고평가됐다. 그 여파로 호황을 구가하던 반도체 산업 외에는 어려움을 겪는 수출 기업이 많았고, 외화 차입에 따른 이자 부담이 원화로 평가했을 때 낮아 보여 국내 기업과 은행이 해외 차입을 크게 늘리는 부작용도 낳았다. 당시 자료를 보면 환율 고평가에 대한 유력한 설명 하나는 “수출 경쟁력을 환율에만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원화 고평가를 용인했다”는 것인데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우리 경제의 체질이 계속 열악해지는 가운데 1997년 동남아 국가들의 위기 발생이라는 심각한 외부 돌발 상황에 따른 큰 충격이 밀어닥치자 나라 경제 전체가 주저앉는 위기가 발생했다.

근래 정부와 여당의 경제 체질 탓과 최저임금 인상 밀어붙이기를 보며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진짜 의도는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니라 자영업 구조조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에서 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많은 것이 국제비교에서 쉽게 드러나는 우리 경제의 큰 취약점이다. 보통 소규모 업체는 생산하는 물건이나 고객당 평균 비용이 높기 때문에 경쟁력이 낮다. 편의점이 좋은 예다. 점포가 너무 많아 고객이 분산돼 고객당 매출은 작은 반면 비용이 높아 모두 어렵다.

작을수록 인건비 비중이 큰데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은 규모가 작은 업체, 그리고 체질이 부실한 업체일수록 더 치명적이다. 충격 요법을 통해 자영업 부문을 구조조정하겠다는 발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의심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좀 섬뜩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반발에 허둥지둥 온갖 지원책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내 생각이 너무 앞섰음을 깨닫는다. 하기야 애초 체계적이고 깊은 뜻이 있었으면 정책 추진이 지금처럼 두서없지 않았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불안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보다 수출 의존도가 더 높기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해외 상황에 더 노출되어 있다. 정책 당국자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칠 것이 아니라 진짜 경제 체질 개선을 어떻게 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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