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이야기] 20.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입력 2018-07-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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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결승에 올라갈 두 나라가 정해졌고 곧 우승국이 가려진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유독 이변이 많았다. 가장 큰 이변은 1%라는 확률을 뚫고 우리나라가 2대 0으로 독일을 이긴 것이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80년 월드컵 역사상 독일을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어렵다”라는 말처럼 처음은 어렵고, 이전에 없던 것이라 신선하다.

수십억 원 하는 셰익스피어 전집 초판(初版)의 가격이 2판에 비해 몇 배가 넘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책만큼은 못해도 ‘수집’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만년필 역시 초기 산은 가격이 높다. 다만 모든 초기 산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명작이어야 하고, 초기 산을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130년 넘는 만년필 역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첫 번째는 1921년에 출시된 오렌지색 파커 듀오폴드다. 듀오폴드는 검은색 일변도(一邊倒)의 만년필 세계에 파랑, 노랑 등 컬러 제품을 선보인 명작이다. 초기 산 듀오폴드는 뚜껑에 밴드(Band:반지 같지만 납작한 금속 고리)가 없는 것이 나중의 것들과 눈에 띄게 차이나는 부분이다.

밴드가 있고 없고에 따라 가격은 최고 4배까지 차이가 난다. 지금의 경우 고급 만년필은 뚜껑에 밴드가 있는 것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지만, 1920년대 초에 밴드는 필수가 아니었다. 밴드가 필수처럼 여겨지는 것은 미국의 경우 1920년대 후반, 독일의 경우는 1930년대 초부터이다.

밴드가 없어 초기 산으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명작은 독일에도 있다. 1929년에 출시된 펠리컨사의 첫 번째 만년필이다. 이 만년필이 명작인 이유는 몸통 끝에 있는 손잡이를 돌려 잉크를 넣는 방식인 피스톤 필러의 원조이기 때문인데, 1930년대 것들과 구별되게 밴드가 없다. 이것 역시 밴드가 있는 나중의 것들에 비해 수배의 가격에 거래된다.

▲1929년 펠리컨 첫 번째 만년필 광고. 두껑에 밴드가 없다.
▲1929년 펠리컨 첫 번째 만년필 광고. 두껑에 밴드가 없다.
그렇다면 밴드만이 초기 산을 구별하는 유일한 힌트일까? 1941년에 출시된, 두말할 나위 없는 명작인 파커51은 밴드의 유무로 판정할 수 없다. 대신 몸통 끝에 분리되는 손잡이에 초기 산인 1941년 산이라고 각인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각인은 지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만년필 역사상 파커51은 가장 많이 생산된 것 중 하나이고, 분해가 쉬워 나중의 것들과 섞여 재조립되는 것이 많다.

마지막은 빼놓을 수 없는 현대의 명작인 몽블랑149이다. 몽블랑149는 1952년에 출시되어 현재까지 중단 없이 생산되고 있는 최장수 만년필이다. 초기 산은 캡 상단의 화이트스타가 아이보리색이고, 잉크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충전장치가 살짝 다르지만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밴드가 가장 중요한 힌트가 된다.

몽블랑149는 밴드가 세 줄인데 가운데가 굵고 위와 아래는 가늘다. 위와 아래의 가는 두 줄의 밴드가 나중 것들과 다르다. 초기 산은 은으로 만들어져 은색이다. 나중 것들은 황동(黃銅) 위에 도금이 되어 있어 금색이다. 은으로 된 두 줄은 변색되고 늘어나는 단점이 있지만 몽블랑 마니아들은 몇 배를 더 주고도 살 만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은 몽블랑에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만년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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