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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는 어떻게 아프리카 부국 짐바브웨를 망가뜨렸나

짐바브웨는 한때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로 불릴 정도의 아프리카 부국 중 하나였다. 그러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93)의 37년 독재로 경제 파탄에 이르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짐바브웨의 국내총생산(GDP)은 1991년 86억 달러(약 9조5202억 원)에서 2008년 44억 달러로 감소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독립 후 첫해 1981년 1100달러에서 1998년 300달러로 급감했다.

이런 가운데 무가베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추진하던 ‘부부 세습’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37년간 군림한 무가베의 독재도 막을 내리게 됐다. 15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은 짐바브웨 군부가 전날 저녁 수도 하라레에 무장 진입해 정부청사와 국영 방송사 등 국가 주요시설을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무가베 대통령은 가택 연금됐다.

자원 부국이자 풍부한 농업을 자랑하던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로 불렸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무가베 대통령이 추진한 토지개혁은 재앙의 시작점이었다고 CNN머니는 평가했다. 무가베 정권이 추진한 토지개혁의 목적은 식민지 시대 적폐로 여겨진 백인 농장주의 토지 소유를 종식하는 것이었다. 무가베 정권은 1992년 ‘토지취득법’을 개정해 백인이 토지 소유권을 포기하도록 했으며 이듬해에는 이에 반대하는 백인 농장주를 추방하겠다고 위협했다. 2000년까지 4000여 명의 백인 농장주가 토지를 포기하도록 했고 짐바브웨의 농업 생산량은 대폭 감소했다. CNN머니는 당시 짐바브웨에 2년간의 흉작과 가뭄이 겹치면서 60년 만에 최악의 기근을 낳았다고 전했다. 무가베 정권의 강압적인 조치에 반발한 외국 정부들이 짐바브웨에 대한 구호 지원을 중단하면서 짐바브웨의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짐바브웨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마주했다. 구호물자 공급이 중단되자 공산품 부족을 겪은 짐바브웨는 물품을 수입하려고 중앙은행에서 화폐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물가는 24시간마다 두 배로 뛰었다.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율은 2000년 59%에서 2003년 600%로 뛰었으며 2006년에는 1200%를 기록했다. 2007년 6만6200%, 2008년 말까지 약 800억%라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짐바브웨 정부의 대응은 2007년 인플레이션을 불법이라 선언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짐바브웨 정부는 2009년 통화정책을 포기하고 미 달러와 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 등 7개국 통화로 거래를 진행하도록 허용했다. 지난해 말에는 만성적인 현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채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처럼 자원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담배와 금, 플래티늄 등이 주요 수출품이다. 다이아몬드 매장량은 러시아에 이은 2위이며 플래티늄 매장량은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많다. 최근에는 중국의 투자로 담배 수출을 되살렸다. 담배는 짐바브웨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들은 부패한 정권과 과도한 경제 간섭 때문에 짐바브웨에 투자하기를 꺼리고 있다.

본래 독립운동가로 추앙받던 무가베 대통령은 1980년 집권 이후 아프리카 최장수 독재자로 자리를 지켰다. 그는 “100세까지 대통령을 하겠다”고 말해왔으며 지난 7월에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건강이 악화하자 자신의 지위를 41세 연하 부인 그레이스에게 넘겨주려던 무가베 대통령은 쿠데타를 마주하면서 독재 정치를 마감하게 됐다.

푼미 아킨루이 실크인베스트먼트 아프리카 포트폴리오 관리자는 “짐바브웨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면서 “올바른 사람이 권력을 갖고 이를 신속히 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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