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35. 헌경왕후(獻敬王后)

입력 2017-06-19 10:56 수정 2017-06-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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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풍파속 한중록 남긴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1735~1815)로 더 잘 알려진 헌경왕후는 장조(莊祖·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다. 아버지는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관찰사 이집(李潗)의 딸이다. 본래 세자빈이지만 고종 대에 ‘헌경왕후’, 대한제국기인 1899년에 ‘의황후’로 높여졌다.

1744년(영조 20) 동갑내기 사도세자와 가례(嘉禮)를 올리고 1752년 아들 정조를 낳았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면서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1762년에 영조를 대신해 정사를 본 남편이 뒤주에 갇혀 굶어 죽는 참변을 당한 것이다. 스물여덟에 과부가 된 혜경궁은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나왔다. 얼마 후 영조가 사도세자 복위를 결정하자 아들을 데리고 다시 궁으로 갔다. 영조는 아들 장례를 마치자 손자를 왕세손으로 책봉했다. 그리고 혜경궁을 만났다. 혜경궁은 그날 일을 ‘한중록(閑中錄)’에 이렇게 기록했다.

“8월에 임금을 뵈니 나의 서러운 회포가 어떠하겠는가마는 감히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저희 모자가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다 성은이옵니다.’ 임금께서 내 손을 잡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이러할 줄 생각지도 못했구나. 내가 너 보기를 어렵게 생각했더니 네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구나. 아름답도다!’ 이 말씀을 듣고 내 심장은 더 막히고, 죽지 않고 모질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했다.”

혜경궁은 견뎌냈다. 아들만은 남편 전철을 밟지 말고 보위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채 피기도 전에 꺾여버린 남편의 통한을 씻어내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냉철한 판단으로 인내하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혜경궁 나이 마흔 둘에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혜경궁은 그저 왕의 생모일 뿐 대비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정조가 진종(眞宗·효장세자, 영조 맏아들)의 양자로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혜경궁의 마음을 더 찢어놓은 것은 바로 친정 식구들의 고초였다.

1776년 3월 10일,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어머니 칭호를 ‘혜경궁’으로 높였다. 3월 20일에는 아버지에게 ‘장헌(莊獻)’이라는 시호를 올렸다. 그리고 아버지 죽음에 대한 책임을 신하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정조에게 아버지 죽음 이상으로 충격적이던 현실은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혜경궁의 아버지 홍봉한 역시 방관적인 태도를 취했다. 작은아버지 홍인한마저 영조 말년에 정조의 대리청정을 가로막는 언행을 했다. 혜경궁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결국 1776년 작은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마저 1778년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하지만 혜경궁은 주저앉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남김없이 기록해 가족을 위해 항변했다. 환갑에 시작한 기록은 일흔 한 살에야 끝을 보았다. 뒷방의 늙은 왕실 여인으로 나앉는 대신 ‘기록’을 선택해 개인의 이야기를 ‘역사’로 만들었다. ‘한중록’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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