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탄핵심판, 무책임한 ‘각하’만은 안 된다

입력 2017-03-0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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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부국장 겸 정책사회부장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설사 대통령일지라도.”

지난달 초 제임스 로바트 미국 워싱턴주 연방 지방법원 판사가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의 효력을 잠정 중지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한 말이다. 효력 중지된 행정명령은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입국을 한시적으로 금하는 내용으로, 트럼프가 서명할 때부터 반(反)헌법적이고 인종차별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로바트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반이민 정책에 급제동을 걸면서 “삼권분립 체제에서 헌법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개입한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 달이나 지난 이 판결의 뒷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우리나라 법원의 어정쩡한 판결이 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어서다. 사실 우리나라 사법부의 ‘정권 눈치보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도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사법부의 칼날이 더 날카롭게 다가간 건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정권이 바뀌어서야 유죄가 무죄로 번복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사법부의 치욕에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이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 집행 불승인처분 취소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내린 각하(却下) 결정도 하나의 사례로 추가될 듯싶다. 이규철 특검보도 특검 수사 종료 하루 전인 지난달 27일 정례브리핑에서 청와대 압수수색이 무위로 끝난 것과 관련해 “법원에서 적법하게 발부된 영장을 집행하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아쉽다”며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입법적 해결 방안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행정법원 결정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의 각하 결정은 법원이 앞서 발부한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과 상반된 입장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압수수색을 허가했으면서, 청와대가 반발하자 “형사절차 입법 미비에 따른 문제를 행정소송으로 다루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다툼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특검이 출범하기 전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수사를 벌일 때도 법원은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청와대의 거부로 압수수색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특검도 마찬가지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으나 벽에 부딪쳤고, 행정법원은 결국 이 논란을 해결하지 않은 채 회피했다.

원래 법원은 다툼이 있을 때 법에 따라 시시비비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특검 역시 청와대와 다툼이 있었기에 이 사안을 법원에 물어본 것이다. 법이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행정법원의 설명이 치졸한 변명으로 들리는 이유이다.

더욱이 지난해 말부터 빚어진 우리나라 헌정사상 초유의 혼란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도 행정법원은 각하 결정만은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 특검의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든지, 아니면 받아들이든지 가부를 결정했어야 했다. 청와대의 주장대로 군사상 비밀과 공무상 누설이 염려된다면, 일단 특검의 신청을 기각하고 압수수색 내용을 더 조율하면 된다. 특검도 이를 고려해 청와대 압수수색 범위와 대상을 최소화했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청와대도 범죄의 증거물이 경내에 있는지 없는지를 공개했어야 했다. 증거가 있다면 일단 꺼내놓고 유죄 여부를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 순리이다.

조만간 선고 결과가 나올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도 일부 재판관이 각하 의견을 낼 것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광화문의 촛불과 시청 광장의 맞불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각하만이 분열 정국을 해결하는 방안”이라는 주장이 배경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퍼뜨린 이 설은 재판관 6명이 인용(認容)하지 않으면 탄핵이 무산된다는 다분히 ‘의도된 정치적 노림수’에 불과하다. 절차상의 문제를 들먹이며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대리인단 측의 주장도 마찬가지 의도이다.

탄핵심판에 각하 의견이 나와서는 안 된다. 인용되든 기각되든 혼돈을 끝내도록 책임 있는 결정이 나와야 한다. 헌재는 정권이나 특정 세력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법의 울타리 안에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통령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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