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회색 백조 Grey Swan--이 강요된 어정쩡함이라니!

입력 2017-02-02 10:44 수정 2017-02-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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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랙 스완(Black Swan)이 된 것은 한참 전이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리 언론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일어나지 않고, 트럼프도 미국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둘 다 일어날 수 없는 일로 보았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택했고,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검은 백조가 나타난 것이다.

검은 백조가 불확실성으로 인한 암울함과 어두움의 상징이 된 것은 월스트리트의 투자전문가 나심 탈레브가 ‘검은 백조(Black Swan)’를 출간한 이후다. 2007년에 나온 이 책에서 그는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블랙 스완’이라고 이름 붙였다. 백조는 오직 흰색이라고만 생각해온 유럽인들이 17세기 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백조를 목격한 것이 이 명명의 근거다.

탈레브가 책에서 예측한 블랙 스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바로 이듬해인 2008년 월스트리트가 이로 인해 붕괴하고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지자 ‘블랙 스완’ 이론은 경제를 벗어나 정치·사회에서의 이변까지 아우르게 됐다.

브렉시트를 결정했지만 오랫동안 잠잠한 행보를 해 온 영국과는 달리 트럼프는 여전히 하는 말마다, 내놓는 정책마다 세상에 걱정거리를 더하고, 암울함을 더 짙게 하고 있다. 인종차별, 종교차별, 입국장벽, 무역장벽, 적대감 조장, 반(反)이민정서 조장…. 이 검은 백조, 이 블랙 스완이 최근 며칠 사이 세계에 던진 충격과 파급 효과의 크기와 방향은 누구도 모른다. 최악이 될 것이라는 점만 확실할 뿐이다.

‘트위트(Tweet)’는 작은 새가 우는 귀여운 소리인데 이 검은 백조는 아무 때나 ‘트위트’라며 거칠고 쉰 목소리로 협박과 공갈을 실어 보낸다. 백조라면 죽을 때 한 번 울어야 마땅한데, 이 검은 백조는 내킬 때마다 마음대로 목을 길게 뺀 채 꺽꺽거리며 세상을 떨게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겪는 대통령 탄핵 심판도 ‘블랙 스완’이긴 매한가지이다. 대통령의 무능과 무도덕함이 이 정도일 줄은 손가락 몇 개를 잃은 사람의 손가락 숫자만큼도 안 되는 자들만 알았던 것 아닌가? 누가 예측할 수 있었나? 우리 대통령의 목소리도 고집, 억지, 거짓에 있어서는 트럼프 못지않다.

잠깐, 검은 백조가 한꺼번에 이렇게 자주(작년에만 트럼프, 브렉시트, 우리 대통령 등 최소 세 차례!) 나타나도 검은 백조인가? 검은 백조의 출현이 일상사가 된 게 아닌가? 탈레브도 잘 몰랐던 것 같다. 검은 백조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 어쩌면 가깝다고 해야 할 곳에 숨어 있는 게다. 숨어 있다가 약간의 틈새만 벌어지면 나타나 순식간에 큰 날개를 펼쳐 세상을 어둡게 덮어버리는 게다.

머리 좋고 이름 짓기 좋아하는 경제학자들은 탈레브에게서 자극을 받아 ‘회색 백조(Grey Swan)’도 만들어냈다. 2012년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회계법인 PwC가 처음 쓴 말인데, “이미 알려졌거나 예측 가능한 악재이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가 회색 백조란다.

우리 머리를 언제나 묵직하게 만들고, 일을 저지를 줄 알지만 어찌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어정쩡하게, 엉거주춤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게 ‘그레이 스완’이다.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 그래서 어쩌면 블랙 스완보다 견뎌내기 힘들게 만드는 것, 이 모든 게 회색 백조이다.

트럼프도, 우리 대통령도 지금은 회색 백조가 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또 무슨 말, 무슨 짓들로 경악케 하고 체념케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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