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각자도생’이라니, 맙소사!

입력 2017-01-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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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온라인뉴스부장

“그래서 그치한테 잘 먹고 잘살아라고 쏘아붙이고 나왔지 뭐.”

“잘했네. 근데 얘들아, ‘잘 먹고 잘살아라’가 어쩌다 욕이 된 걸까?”

“반어법 몰라? 못 먹고 못살라는 거지.”

“아닌 거 같은데. 배 터져 죽으란 소리 아니야?”

“여기 봐봐, 그게 말이지, ‘너 혼자만’이 생략돼 있단다. ‘에라 이 이기적인 놈아. 남들이야 어찌됐든 너만 부귀영화 누려 봐라’란 막말이란다.”

동창들과 함께한 송년회 자리, ‘잘 먹고 잘살아라’의 유래에 대한 짧은 토론은 재빠르게 스마트폰 검색을 두들긴 친구의 정보로 정리됐다. “상당히 고차원적인 욕이네.” 우리는 모두 공감했다. ‘혼자만’ 잘산다는 건 무서운 저주다.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표현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올해 대한민국 트렌드의 하나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거론되고 있다. 어떤 이는 새해 회사의 구호가 ‘각자도생’이라며 보호 무역주의에 맞서고 이기주의에 맞설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저기서 ‘살길은 스스로 알아서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마치 생존전략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내 당만’, 기업인들은 ‘내 회사만’, 공무원들까지 ‘내 밥그릇만’이다. 국민마저 국가도 못 믿겠고, 다른 사람도 못 믿겠으니 어떻게든 ‘나 혼자 잘 먹고 잘살 길을 찾아보자’다. ‘각자도생의 정신으로 무장하자’가 마치 정유년 구호가 된 듯하다.

도대체 이 삭막한 말이 언제부터 등장한 걸까? 누구는 ‘세월호’와 ‘메르스’를 거치며 유행을 타고 있다고도 하고, 누구는 이미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으며 그때부터 생겨났다고도 한다. 어쨌든 작년, 말도 안 되는 나라 꼬락서니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이니 “나부터 살자”라고 할 만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각자도생’은 탄식에 그쳐야 한다. 이게 말하자면 내 살길만 모색하겠다는 것인데 마치 무슨 시대정신이나 구호라도 되는 양 내걸고 나설 수 있는 게 아니다. 원래 각자도생이란 조선시대 대기근이나 전쟁 때 임금에게 올라간 상소문에 등장한 백성들의 모습이다. 두 손 들어 버린 국가와 시스템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참혹한 상황이지 의지가 담긴 말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도생은 공동체를 병들게 한 병원균이다.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자세가 전제된 구조다. 근시안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나만 살겠다고 한다면 공동체의 버팀목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세태가 계속되다 보니 지금 ‘돈이 실력’이고 ‘너나 잘하세요’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 아닌가. 괜스레 억울하고 다른 사람들이 혐오스럽다. 이런 속에서 ‘나만 살자’는 목소리만 커지다니, 각자도생으로 병든 사회가 각자도생을 낳는 모양새다.

재미나게 살고 싶은가. ‘각자’를 잊고 ‘작당’을 할 일이다. 독일에 쇠나우란 전력회사가 있다. 1998년부터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이 회사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녹색 전력을 판매한다. 값은 일반 전력보다 비싸지만 환경을 살리고 원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이 회사의 시발점은 주부 다섯 명의 수다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체르노빌 사건 이후 벌어진 원전 공포를 체감했고 서로 모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행동에 옮겼다. 시민들의 작당, 즉 ‘작은 연대’가 만들어낸 변화다. 내가 처한 곳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늘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과 이를 문제제기로 발전시키고 이에 대한 실천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갈 수 있다. 그러려면 모여앉아 얘기부터 해야 한다. 고민하고 연대하기 위한 모임이다. 내 살길 찾는다며 사회와 사람들에게 냉소를 날리고 돌아앉으면 행복은 없다. ‘공동체 가이드북’ 저자의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더 절실한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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