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무더위, 우병우 - ‘이 또한 지나가리’

입력 2016-08-25 10:44 수정 2016-08-2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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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지독한 이 여름, ‘이 또한 지나가리’가 입에 붙었다. 나 말고 다른 이 여럿도 그랬으리라. ‘태양이 아무리 이글거리고 지글거려도 북위 23.5도에서 적도(赤道) 가까이 내려가면, 땅은 식고 폭염은 산들바람으로 바뀌리라’며 무더위를 어찌할 수 없이 견뎌내고 있을 것이리라.

그런데, 지나가기는 지나갈 텐데, 너무 오래 걸린다. 진이 빠진다. 요 며칠 사이 새벽엔 서늘한 기운을 느끼지만 한낮의 폭염은 여전하다. 폭염은 짜증인데,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간다. 그래서 더 진이 빠진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또한 지나가리’에는 ‘페르시아 우화 기원설’과 ‘솔로몬 왕 기원설’ 두 가지가 있는데 페르시아 우화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우세하다. 페르시아 우화 기원설은 페르시아의 한 왕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찾아오라’고 명령하자 신하들이 ‘이 또한 지나가리’를 새겨 넣은 반지를 바쳤고, 왕은 이 반지를 자기가 찾던 바로 그 물건이라며 좋아했다는 내용이다. 왕이 좋아한 이유는 이 말을 왕들이 갖춰야 할 겸손과 인내의 지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 기원설은 내용은 같으나 명령을 내린 게 페르시아 왕이 아니라 성경 구약시대의 솔로몬 왕이라는 것만 다르다. 옛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의 우화를 전승(傳承)한 것이 솔로몬 왕 기원설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게 위키피디아 편집자들의 주장이다(어떤 이들은 성경-구체적으로는 구약 ‘전도서’-에 ‘이 또한 지나가리’가 나온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 왕이기에 그렇게 연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단다).

‘이 또한 지나가리’는 좋은 말이다. 암담한 절망에서 희망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니까. 또 좋을 때 나쁠 때를 대비하는 것 역시 지혜로운 일이니까. 이처럼 좋은 말이니 페르시아 왕이 반지를 받자마자 기뻐했고, 수천 년 지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회자(膾炙)하고 있으며 이를 주제로 한 시, 예를 들면 미국 시인 랜터 윌슨 스미스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돼 현대의 시인묵객들이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대통령도 지금 혹시 이 말을 마음에 담고 있을까? 우병우 문제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문제를 들여다본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증폭되고만 있어서 폭염이 불러온 짜증을 더 심하게 하고 있다. 결말이 진작 지어졌더라면 기온은 올랐어도 불쾌지수는 그만큼 내릴 수 있었을 텐데 전혀 그게 아니다. 더 꼬이고 더 복잡해져 개그우먼 신봉선의 몇 년 전 유행어처럼 “증말, 짜증 지대로이다!”

우병우 개인이 처가 땅을 넥슨에 비싸게 팔았냐 아니냐 하는 개인 문제가 이제는 국기(國基/國紀)를 흔들었느냐 아니냐로 변질되고, 마침내 이 모든 게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합작해 대통령 흔들기에 나선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어마무시한 음모론으로까지 확산됐으니 무더위는 오늘 내일 사이에 물러갈지 몰라도 국민들의 염증은 오래오래 계속될 것 같다.

대통령은 우병우 내보내는 문제로 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을 이 더위에 더 맥없게 하나? 그를 내보내면 시원해할 사람이 여럿일 텐데, 대통령도 시원해질 텐데 왜 이리도 질질 끄나? 대통령은 시원한 걸 싫어하나?

청와대는 우병우에 관한 의혹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것이 없다고 한다. 음모론과 관련해서는 ‘우병우 죽이기는 이 정부를 식물정부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병우 한 사람의 거취가 죽이고 살릴 만큼 이 정부가 취약한가라는 반문을 불러일으킨 주장이다. 국민적 자존심을 심히 상하게 하는 궤변 같기도 하다.

이런 것을 가리기 위해서는 그의 옷을 벗기고 검찰 수사를 받게 해야 한다. 검찰 인사검증을 맡은 민정수석 비서관이라는 현직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를 받을 때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가 이뤄질 거라고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간인 신분으로 수사를 받고, 의혹을 먼지처럼 탈탈 털어내면 그를 중용할 수 있는 더 깨끗한 명분이 만들어질 것 아닌가?

혹시 대통령은 나라와 역사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너무 몰라 준다고 생각하고 있을라나? 자기가 일부 세력에 의해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려나? 그래서 ‘물러서면 끝장’이라고 믿고 있으려나?

하지만 ‘가치관’은 한순간에 ‘고집’으로 격하되기 일쑤이며,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되는 것 또한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뤄지는 세상이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 한낱 오만으로 취급당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대통령의 ‘가치관’과 ‘결연한 의지’를 그만의 ‘고집’과 ‘오만’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전에도 많았는데 이번 일로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만 같다.

마지막 무더위를 함께 이겨내자고 앞서 말한 랜터 윌슨 스미스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의 일부를 옮겨본다. 류시화 시인의 번역이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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