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중 칼럼]창조경제, 그 불편한 진실

입력 2013-05-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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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논설실장

최근까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3대 미스터리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새 정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의 생각이 그것이다.

구태 정치 청산을 외치면서 가장 낡은 구태인 지역정치에 기대고자 ‘광주 민심’을 언급한 안 전 교수의 새 정치나, 미사일과 핵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줄타기하는 김 위원장의 속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는 어떤가?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만나 “창조경제가 3대 미스터리라는데 미스터리가 풀리고 공감대가 이뤄져 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받아들이는 개념의 모호함은 여전하다.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낙마한 김종훈 전 벨연구소 사장은 창조경제를 ‘과학과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생산적으로 융합해 새로운 일자리와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지만, 이를 도식화하려는 정부로서는 막막할 것이다.

실제로 그가 사라진 후 청와대 비서실과 정부는 창조경제의 개념조차 정리가 안 된 듯 우왕좌왕했다. 여론의 비판이 커지자 대통령이 나섰다.

싸이의 ‘젠틀맨’을 대표적인 창조경제의 사례로 꼽았다. 최초 안무가에게 저작권을 인정해 저작권료를 지급했다는 의미에서다.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언급한 듯 보이지만, 세상은 더 혼란스러워했다.

여기에 모 공중파방송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도 창조경제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매주 치열한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시청률을 끌어올렸다는 점을 인정한 듯 보이지만, 지금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하락으로 위기에 처했다.

문제는 이후 정부 각 부처가 내놓은 정책 대부분에 창조경제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좀 잘된다 싶은 사례는 모두 창조경제라고 덧칠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는 창조경제를 설명하는 그림이라며 개념도 하나를 공개했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창의성의 씨앗이 여러 산업 및 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재탄생하는 개념을 나타낸 것이지만, 스스로도 마땅치 않았던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양대 김창경 신소재공학부 교수가 얼마 전 정부 주도로 열린 창조경제 토론회에서 “창조경제를 규정하려는 자체가 비(非)창조적”이라며 “창조경제의 개념을 논의하는 것보다 목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수단을 논의할 때”라고 지적한 것이 차라리 적절하다. 또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은 이해하기라도 쉽다.

창조는 규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자는 취지면서도 정부가 하는 방식은 종래에 하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이키가 운동에 재미를 부가하자는 취지에서 내놓은 ‘나이키와 아이팟 키트’나, 대표적 IT기업 구글의 무인 자동차산업 진출과 입는 컴퓨터 등이 창조이며 혁신이고 통섭(統攝)이다. 궁(窮)하면 통(通)하고,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기업이 돈이 된다 싶으면 죽자 살자 달려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창조경제지수를 만들겠다고 한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다. 오는 29일에는 창조경제 비전선포식도 갖는다고 한다. 세부 추진과제도 200여개나 선정했다고 한다. 실체도 없는 창조경제를 대체 어떻게 계량화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러다 상까지 주겠다고 달려들 듯하다.

김대중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도입한 ‘신지식인’과 오버랩된다. 신지식인을 학력에 상관없이 지식을 활용해 능동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1999년 2월부터 신지식인을 선정해 시상했는데 ‘디워’를 제작한 영화감독 심형래씨가 1호 신지식인상을 받았다. 디워의 작품성과 흥행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지금은 몰락해 버린 심형래씨와 같은 사례를 또다시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듯, 단어에 집착해 포장하고 의미를 덧붙이다 보면 본질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정부가 내걸었던 녹색경제를 더 이상 찾지 않듯, 5년이면 용도 폐기될 수도 있는 창조경제는 임기 중 한 건 하겠다는 전형적 과시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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