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야권의 광주 쟁탈전-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13-05-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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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정도 되는 사람들은 1980년 광주를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당시 광주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광주는 암울한 역사의 암호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희생당했고, 그래서 당시 대학에 다니고 있던 사람들은 1980년 5월 18일을 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80년대 학번들은 이념적으로 ‘광주의 사생아’들이었다. 그런 광주가 요새 다시금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갑자기 ‘임을 위한 행진곡’이 트집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 지도부가 서로 앞을 다투어 광주를 방문한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될수록 광주의 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든 안철수 의원 측이든 호남을 끌어안으려면, 아니 야권의 정통성을 획득하려면 광주를 ‘팔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야권의 움직임을 하나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지금 민주당 구성원의 대부분은 1980년대 독재권력으로부터의 고문의 고통을 감내하며 투쟁하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들 대부분은 전두환 정권이라는 현대사의 가장 혹독했던 존재에 대해 몸으로 저항했기에 최소한 역사의 방관자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안 의원이 광주를 강조하고 광주를 말하면 좀 당혹스러워진다. 안 의원과 동년배인 내 입장에서 보면 당시 안 의원이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80학번이든 81학번이든 당시 대학가의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당시 방관자였기 때문에 지금도 광주를 언급하거나 광주를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누구든 그런 자유는 있다.

문제는 안 의원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맨날 주장하는 데 있다. 새로운 정치를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기 위해 정치적 쇼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안 의원이 광주를 방문하고 광주의 아픔을 느끼는 것이 쇼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쇼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이 먼저 과거 청년시절에 광주의 아픔을 외면했는지, 그리고 외면했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외면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반성부터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지금은 왜 생각이 바뀌어 광주를 찾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 없이 5월의 광주를 찾는다면 그것에 대한 진실성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안 의원이 지금 호남지역에서의 인기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그렇게 한다면 그런 인기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 역시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의 지지를 훨씬 웃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민주당을 대신할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즉 호남 주민들은 민주당으로부터 일종의 배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반사작용으로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는 것이지 안 의원 자체를 지지한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안 의원이 이런 호남의 지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진실성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일 호남지역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정당이 출현하기라도 하는 날엔 진실성에 기반하지 않고는 배겨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당 출현 가능성은 지난번 재보선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지난 재보선에서 충남 유권자들이 보여준 높은 투표율과 몰표 현상은 또 다른 지역당의 출현 가능성을 시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안 의원이 신당을 만든다면 내년 지방선거 이전이 될 확률이 높은데 최소한도 지금 본인의 진실성을 보여줘야 기존의 정치와는 확연히 대비돼서 바람이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안 의원은 일단 광주를 그냥 놔두는 편이 옳다는 생각이다. 아니면 역사 앞에 무릎을 꿇고 솔직한 반성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주장하는 새 정치가 역사의 맥락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또 국민들 마음속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님을 안 의원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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