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창조적 북핵 해법을 기대한다 - 김경철 부국장 겸 정치경제부장

입력 2013-05-0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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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을 만한 제안이었다. 승공과 멸공만을 통일의 길로 여겨야 했던 시절, 느닷없이 평화통일과 창조의 경쟁을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반공법으로 붙들려 치도곤을 당했을 터였다.

43년 전인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광복 25주년 기념 경축사에서 밝힌 8·15 평화통일 구상선언은 여러모로 놀랄 만했다.

내용부터 그랬다.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선의의 경쟁, 즉 다시 말하자면 민주주의와 공산독재의 그 어느 체제가 국민을 더 잘 살게 할 수 있으며, 더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회인가를 입증하는 개발과 건설과 창조의 경쟁에 나설 용의는 없는가.”

무섭게 반공정책을 펴던 군인 출신 대통령이 홀연히 체제 경쟁을 제안하며 금기였던 북한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시점이다. 1960대 후반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관계가 가장 살벌했던 시기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앞섰던 북한은 1968년 유격전 중심의 대남 공세를 폈다.

1968년 1월, ‘박정희 목 따러 왔다’는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사건에 이어 이틀 뒤에는 미국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에 나포됐다. 또 10월 30일엔 경북 울진 등에 ‘무장공비’ 130여명이 침투했고, 이듬해 4월에는 미 해군 정보기가 격추돼 30여명이 사망했다.

분풀이를 해도 성이 차지 않을 판에 평화통일을 들고 나온 이유가 뭘까. 69년 7월 발표된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정책인 닉슨독트린에 답이 있다.

중국을 향한 유화 제스처였던 이 독트린은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며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하여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하여 그에 대처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각국은 내란이나 침략도 스스로 해결하라’는 이 선언은 한국전쟁 직전의 애치슨 라인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실제 남북평화통일구상을 발표하기 한 달 전쯤인 70년 7월, 미국은 5년내 주한미군 2만명을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선(先)건설 후(後)대화를 통일 방안으로 내세우던 박 대통령이 건설과 대화를 함께 추진하는 정책으로 급선회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군 철수에 따른 힘의 공백을 대화로 완충하면서 국력을 키울 시간을 벌자는 현실적인 대응책이었던 것이다.

10월 유신이란 장기 독재로 희석이 되기는 했어도 결과는 신통했다. 남북은 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에 합의했다. 이후 정부 차원의 ‘남북조절회의’와 민간 차원의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진행됐고, 74년 광복절에 박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정착->상호 문호개방과 신뢰회복->남북한 자유총선거’라는 평화통일 3단계 기본원칙까지 발표했다.

양측의 심모(深謨)야 달라겠지만 어쨌든 75년 3월까지, 그러니까 선언 발표 후 5년 가까이 나름의 효험을 발휘했다. 대화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푼 것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킨 데 이어 지난달 9일에는 북한 근로자 5만명을 철수시키며 개성공단을 폐쇄 위기로 내몰고 있다.

핵을 앞세운 북한의 이 같은 형태의 위협은 어느덧 20년이 됐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핵 포기에 따른 대규모 경제지원을 제공했지만 북한 비핵화에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6자회담을 비롯한 기존 비핵화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진영은 북한의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만큼 북한에 더욱 강한 압박을 가하고 핵무장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맞교환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보수 대 진보라는 틀에 갇힌 상대방 헐뜯기로 흐르고 있다.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새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또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서울프로세스는 8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제안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친이‘창조의 경쟁’을 제안했듯 박 대통령 역시 창조적 전략으로 남북 문제를 주도하며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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