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니 만나보니]난공불락 해외 거래처 ‘마술’로 뚫다

이지용 코오롱글로벌 화학원료팀 과장

▲코오롱글로벌 이지용 과장이 '매직 카드'와 '매직 볼' 등 마술도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yangdoo@

“팀장님 드디어 해냈습니다. 동남아에서 또 하나의 거래처를 확보했습니다.”

2009년 8월20일, 코오롱글로벌 화학원료팀 이지용 과장(38)은 상기된 얼굴로 출장업무 보고를 마쳤다. 지난 2007년부터 2년 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말레이시아 대형 플라스틱 제조업체인 A사와의 첫 거래를 성사시킨 직후의 일이다.

코오롱그룹의 과천 본사에서 이달 22일 만난 이 과장은 당시 극적이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코오롱그룹의 종합상사 계열사인 코오롱글로벌에 2002년 입사 후 11년 동안 줄곧 해외 영업을 담당해 왔다.

“2009년 8월, 말레이시아는 유난히 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이런 성과를 낼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죠.”

이 과장은 그곳에서 낯익은 현지인을 만났다. 지난 2년 간 공들여 영업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던 A사의 구매 담당자였다. 이 과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식탁 아래에 내려놨던 서류 가방을 열었다. 이때까지는 여느 영업사원들이 하는 행동과 똑같다. 하지만 그의 두 손에는 두툼한 제품 카탈로그 대신 ‘매직 볼’, ‘매직 펜’, ‘매직 카드’ 등 마술 도구가 들려있었다.

“영업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관계 개선을 위해 저의 장기인 마술을 보여줬습니다.”

이 과장은 단순히 마술 시현에만 그치지 않고, ‘스토리’를 심었다. 이를 테면 손가락 사이로 ‘매직 볼’을 두 개로 쪼개고, 다시 하나로 합치면서 “서로 다른 당신과 내가 만나 한마음 한뜻을 가진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겠죠”라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마음이 담긴 마술을 선보인 이 과장은 결국 구매 담당자의 환심을 샀고, 2년 만에 A사를 거래처로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화학원료팀의 해외 매출도 종전 대비 16% 가량 늘었다.

이 과장은 지금의 아내에게 선물할 ‘특별한 프로포즈’를 계기로 지난 2005년 처음 마술을 접했다. 그는 “마술을 배울 당시엔 업무적으로 사용할 생각은 못했다”며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과 정서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술을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각종 마술을 보여주면 분위기도 부드러워지고, 가격 및 물량 협상도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회사에서도 ‘마술사’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크고 작은 각종 사내 행사에서 마술 공연을 펼치는 것은 물론, 2009년 결성된 사내 동아리인 ‘매직 클럽’을 이끌고 있다.

“마술은 제 인생에 있어서 ‘여의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을 둔 화목한 가정을 이뤘고, 어려운 계약을 성사시키며 직장에서 남다른 성취감도 느끼니 말이죠.”

이 과장은 올해부터 재능기부에 나설 계획이다. 회사 측과 협의해 개인이 아닌 코오롱을 대표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마술로 인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이 과장은 오늘도 마술쇼를 바이어에 선사하며 ‘글로벌 코오롱’ 성장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