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컬럼]나라빚 '3중주'

입력 2011-01-28 11:00 수정 2011-01-2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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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빚쟁이들의 십중팔구는 빚을 줄이거나 감추는 습성이 있다 한다. 빚이 없는 것처럼 숨겨야 돈을 더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빚쟁이들은 친지 등 주변에서 도와주려 갚아야 할 돈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밝히라 해도 굳이 숨기고, 줄여 얘기한다는 점이다.

빚쟁이들의 이런 버릇은 빚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고, 결국 ‘빚이 빚을 낳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이쯤되면 자력으로는 되돌이킬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

1998년 초여름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IMF 환란 사태와 초여름 무더위로 심신이 지쳐있을 무렵 기업퇴출의 공포는 금융계와 산업계를 넘어 국민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금융권에서 55개 부실기업을 퇴출한 것이다. 문제는 당시만해도 금융전산망이 정교하게 크로스 체크되지 않아 이들의 숨겨진 부채를 찾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여기저기에서 두더쥐처럼 튀어나오는 부채로 인해 퇴출기업들의 파산정리 절차가 갈수록 꼬인 것이다. IMF 이후 단행된 첫 구조조정은 퇴출기업들이 숨겨놓은 부채로 인해 시간이 소요되면서 산업전반의 구조조정 일정표가 뒤로 밀렸고, 국민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그만큼 더 커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일본의 장기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에 육박하는 등 너무 높고, 한동안 개선 여지가 없다는 게 강등의 이유다. 일본의 나랏빚이 급격히 늘어난 데는 복지정책을 위해 국채를 과도하게 발행한 때문이다.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엔화값이 급락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이 출렁거렸으나 다행히 다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가 일본의 등급유지 방침을 밝히면서 추가 요동은 막아냈다. 일본의 등급 강등은 하나의 사례다. 미국 등 선진국들도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연쇄 신용등급 하락과 같은 시한폭탄이 폭발할 수도 있다.

한국은 국가부채의 위험에서 안전할까. 기획재정부가 이틀전 나랏빚(국가채무)을 새로 확정하는 재정통계 개편안을 내놓았다. 회계기준을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바꾸고, 정부의 포괄범위를 중앙 및 지방재정뿐 아니라 비영리 공공기관까지 넓히는 것이 개편안의 핵심이다.

재정상태가 부실한 지자체가 많고, 비영리 공공기관까지 포함되니 빚이 엄청나게 늘어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재정통계 개편으로 한국의 국가채무는 2009년말 기준 359조6000억원에서 372조8000으로 소폭 늘어나는데 그친다. 마법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부채대상이 확대됐음에도 부채액은 찔끔 늘어나는데 그칠까. 정부의 묘수가 있어 가능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수자원공사 등 부채비율이 높은 21개 공기업의 빚을 국가채무에서 제외한 것이다. 묘수(妙手)다. ‘원가보상률이 50%가 넘는 공기업은 제외한다는 원칙’을 개편안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LH공사법 11조는 자체 적립금이나 준비금이 부족할 경우 LH손실은 정부가 떠안도록 규정하고 있다. LH의 부채는 곧 정부부채라는 의미다. 결국 나랏빚을 절묘하게 숨겨 놓은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묘수는 ‘꼼수’다. 꼼수는 오래 가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권에서 촉발된 ‘복지 포퓰리즘 중증’을 앓고 있다. 국론이 분열되고, 지자체 업무가 마비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당장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한 ‘퍼주기식 복지’에 대해 국민은 ‘혜택은 좋지만, 세금은 더 못내겠다’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당연하다.

정치권은 퍼주자 하고, 정부는 나랏빚 숨기고, 국민은 혜택은 늘리되, 세금은 더 못내겠다 한다. 우리도 일본과 같이 나랏빚을 눈덩이처럼 불릴 수 있는 세가지 조건을 착실히(?) 갖춰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앞지르고, 현대차가 도요타와 경쟁하고, 일본에 한류(韓流)가 확산되고, G20 정상회의를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우리가 개최했다 해서 한국이 일본만큼 커졌다 생각한다면 이는 심각한 오산이다. 국가부채로 인한 충격은 수출과 내수 등 경제 펀더멘털이 우리보다 훨씬 강한 일본이 당하는 충격보다 수십배의 위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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