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포를 늘리고 상품을 많이 갖추는 것으로 성장을 기대하던 유통공식은 힘을 잃었다. 예컨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메인 테넌트 공간에서 과감히 매장을 빼고 식당이나 전시, 휴식, 프로모션 공간을 배치한다. 머물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내세웠던 편의점은 식사와 휴식, 재미까지 곁들인 점포에 집중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처럼 낡은 것은 죽어가고 새로운 것은 아직 자리잡지 못한, 과도기다.
이런 변화는 업태 간 경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백화점과 쇼핑몰, 마트와 편의점의 경계가 흐려지고 온라인 주문과 오프라인 점포도 연결된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사이 유통산업의 형태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소비자에게 필요한 변화는 모두 같지 않다. 주말에 시간을 보낼 곳을 찾는 사람에게는 맛집과 문화 공간이 모인 쇼핑몰이 반갑다. 반면 가까운 곳에서 식료품을 사야 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콘텐츠보다 채소와 우유를 살 매장이 얼마나 가까운지가 더 중요하다. 쇼핑이라 해서 이커머스가 누구에게나 대안이 되지도 않는다. 여전히 지역에 따라 배송 가능한 품목과 속도, 비용이 다르고 이커머스 이용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도 있다.
각자의 생존방식을 고민하는 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도 여기까지 넓어졌으면 한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오프라인과 이커머스 사이 경쟁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다만 여기에 소비자에게 필요한 구매 경로가 ‘어떤 방식으로든’ 충분한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어디서 어떤 소비가 어려운지를 짚어보자. 상품 종류를 막론하고 쇼핑할 수 있는 가까운 매장이 부족한 곳인지, 신선식품 배송이 닿지 않는 곳인지, 배송망은 있어도 비용이나 주문 방식이 이용을 가로막는 곳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이를 분석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시장이 들어서야 할지, 점포가 확충돼야 할지, 기존 매장을 배송 거점으로 연결할지, 공동 물류망을 마련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업태 이해관계를 넘은 지역 수요와 점포·물류망을 함께 살피는 큰 그림이다. 이런 큰 그림이 있어야 규제의 목적과 효과도 제대로 따질 수 있다.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 휴업을 유지할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떤 유통 방식이 어디에 필요한지 판단하는 일이다. 유통의 과도기에 정부가 고민할 문제는 문을 며칠 더 열게 할 것인가보다 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