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전문가가 운용하는 '기금형' 도입… 수탁법인 입증책임 강화로 안전성 확보
일시금 대신 연금 수령 유도하는 '옵트아웃' 검토…전체 사업자 성과 순위 공시

노동자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2030년까지 모든 사업장의 퇴직급여 사외적립이 전면 의무화된다. 고질적인 임금(퇴직금) 체불을 막기 위한 조치다.
아울러 그간 저조했던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부 전문가(제3자)가 적립금을 대신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새롭게 도입된다.
고용노동부는 29일 당정협의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런 내용을 담은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올해 2월 도출된 '노사정 공동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해 정부와 노사정 전문가 실무작업반이 3개월간 논의한 결과물이다.
이현옥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전날 백브리핑에서 "노사 모두 안정적인 고수익이라는 상충된 기대를 갖지만 현실적으로는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선호한다"며 "이러한 노사의 현실적 요구를 바탕으로 수급권 보호와 자산운용 선택권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기업 규모에 따라 3단계로 나눠 의무화하기로 했다. 관련 법 개정안이 연내 통과될 경우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8년 1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되며, 2029년 10~99인 사업장, 2030년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전면 확대된다.
사외적립 의무는 각 단계 시행 시점 이후 발생하는 계속근로기간부터 적용된다. 지난해 기준 전체 임금체불액 중 퇴직금 비중이 41.1%(8229억 원)에 달하는 만큼 제도가 안착하면 체불 예방 효과가 클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사외적립 이행력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남성욱 노동정책실 퇴직연금복지과장은 "의무화 시점 이후에도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은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에 자동으로 가입 처리하고 부담금 납입 명세서를 발송해 1차 가입을 유도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응할 경우 과태료 등 단계적 제재 조치가 취해진다"고 말했다.
영세 사업장의 연착륙을 돕기 위해 2027년도 정부 예산안에는 30인 미만 조기도입 사업장 적립금 매칭 지원(60억원)과 50인 미만 경영자금 융자 이차보전(62억원) 사업 예산을 신규 편성했다. 기존 푸른씨앗 재정지원을 포함하면 전체 퇴직연금 지원 예산이 300억~400억원 정도라는 설명이다.
타 연금 대비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지난해 6.47%)을 개선하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도 본격 도입된다. 근로자 개인이 일일이 상품을 골라야 했던 기존 계약형과 달리 전문성을 갖춘 제3자(수탁법인)가 자금을 대신 운용해 주는 방식이다.
수탁법인은 민간 금융회사가 주도하는 '금융기관 개방형', 복수 사용자나 노사단체 연합 중심의 '연합형', 근로복지공단 등 공공기관이 맡는 '공공기관 개방형(푸른씨앗 등)' 3가지로 나뉜다. 기금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예비인가와 본인가의 2단계 인가 체계를 둔다.
이번 기금형 퇴직연금은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적용된다. 또한 한 사업장 내에서 기존 계약형과 기금형을 함께 설정하거나 여러 기금형을 동시에 도입할 수 있으며,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으면 특정 기금형을 가입자 기본값(디폴트)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의 대리인 문제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강력한 통제 장치도 신설된다. 법률에 '가입자 이익 최우선' 원칙을 규정하고, 투자 손실 등 사고 발생 시 수탁법인이 고의·과실이 없었음을 직접 증명해야 면책되는 '입증책임 전환'을 도입한다.
가입자 손실 보전을 위한 '운영위험준비금' 적립도 의무화한다. 남 과장은 "호주 사례를 참고해 수탁법인에 적립금의 0.25% 수준을 운영위험준비금으로 의무 적립하도록 해 수급권 손실 보전을 위한 실질적 방어막을 쳤다"고 설명했다.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DC·IRP) 규제도 과감히 푼다. 현행 70%로 묶여있는 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종합투자계좌(IMA)나 발행어음 등 원리금 보장형보다 수익률이 높은 상품을 투자 대상에 추가한다.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역시 대기성 자산으로 방치되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적용 통보 시점을 '만기 후 4주'에서 '만기 전 2주'로 앞당긴다.
아울러 은퇴 후 일시금 수령(계좌 기준 83.5%)에 쏠린 구조를 바꾸기 위해 별도의 일시금 수령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금이 지급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도입해 연금 수령을 유도한다.
퇴직연금사업자 평가 역시 기존 정성평가 위주의 상위 10% 공개 방식에서 탈피해 수익률과 연금성 강화 등 정량지표를 토대로 40여 개 전체 사업자의 순위를 투명하게 공시할 방침이다.
정부는 다음 달 중순 이런 내용들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번 개편안에서 제외된 '1년 미만 근속자 및 초단시간 노동자'의 퇴직급여 사각지대 해소 방안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며 추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번 방안은 노후 소득의 안정성과 수익성 간 균형을 맞춰 노동자의 노후를 든든하게 지켜내는 제도적 기반"이라며 "개정 법안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입법 추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