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가 ‘119 메모리얼데이' 사업비 1억원을 전액 삭감하면서 지난해 5500여명이 찾았던 행사는 올해 60여명이 참석하는 기념식이 됐다. 소방재난본부는 자체 사무관리비 약 750만원으로 행사를 치렀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닷새 전 국정감사에서 이 행사를 2년에 한 번 여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24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이날 수원시 소재 본부 대강당과 해태공원에서 '제2회 경기소방 119메모리얼데이'를 열었다. 순직 소방관 유가족 14명을 비롯해 추 지사와 소방 관계자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추 지사는 추모사에서 "소방관이 지켜야 할 생명에는 소방관 자신의 생명도 포함돼 있어야 한다"며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도, 그를 구하러 간 사람도 모두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의 목소리를 안전대책에 담아 소방관의 안전을 지키는 데 부족함이 없는지 살피고 처우와 예우도 꼭 바꿔내겠다"고 밝혔다.
올해 주제는 '기억의 곁에, 가족의 곁에'다. 참석자들은 순직 동료를 추모하는 영상을 본 뒤 해태공원에서 헌화와 분향, 묵념으로 고인들을 기렸다. 순직 소방인의 이름과 삶, 도민 추모 메시지를 담은 특별전시도 마련됐다. 추 지사는 유가족을 직접 맞이하고 '유가족과의 대화'로 어려움과 바람을 들었다.
1년 전 행사와는 규모가 달랐다. 2025년 10월 19일 열린 제1회 행사는 도비 1억 원을 들여 소방청사와 잔디마당 일대에서 7시간 동안 진행됐다. 순직 소방공무원 13명의 생전 모습과 사연을 담은 초상화가 전시됐고 추모 걷기,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 응급처치·화재진압 장비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유가족 12가족을 포함해 55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는 사업비 1억원이 제2회 추가경정예산에서 전액 삭감됐다. 소방재난본부는 자체 사무관리비 약 750만원으로 2시간짜리 기념식과 헌화식을 치렀다. 일반 도민을 대상으로 한 추모·체험 프로그램은 모두 빠졌다. 행사 시간은 7시간에서 2시간으로, 참석 인원은 5500여명에서 60여명으로 줄었다.
예산 삭감은 국정감사에서 이미 쟁점이 됐다.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소방본부가 자체 운영비를 들여 겨우 행사를 이어가는 실정인 만큼, 추 지사가 책임을 통감한다면 삭감한 119메모리얼데이 예산을 전액 복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도 "올해는 예산이 전혀 지원되지 않아 소방본부가 자체 경비 750만원을 쪼개 강당에서 겨우 60여 명 정도만 모실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추 지사는 당시 재정 상황을 이유로 들며 행사를 2년에 한 번 여는 격년제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예산 복원 요구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그리고 닷새 뒤 그 축소된 행사장에서 예우를 바꾸겠다고 밝힌 것이다.
경기도는 행사 운영 방식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기존 행사에서 소방차량 30대를 동원한 카퍼레이드가 진행됐고 사업비 1억원 가운데 약 7000만원이 외부 용역에 쓰였다는 점을 들었다. 재정 위기 상황에서 민생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삭감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경기도가 이날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에는 추모사와 유가족 대화, 특별전시, 추모영상이 상세히 담겼다. 그러나 사업비 1억원이 전액 감액된 사실과 자체 경비 750만원으로 행사를 치른 사실, 참석 규모가 줄어든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현장에서는 확대 요구가 나왔다. 정용우 미래소방연합노동조합 위원장은 "순직 소방관 유가족에 대한 예우와 동료들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 행사는 더욱 확대되고 강화돼야 한다"며 "이는 현직 소방관들에게도 자긍심이 되고, 어려운 현장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용기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소방 출신 전직 도의원도 공개 비판에 나섰다. 윤성근 전 경기도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경기도의 소방재정 운용을 문제 삼았다. 윤 전 의원은 1989년 소방공직에 입문해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인사정책팀장을 거쳐 2021년 오산소방서장으로 명예퇴직한 전국 최초의 소방관 출신 지방의원으로, 제11대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윤 전 의원은 소방안전특별회계가 통합재정안정화기금에 쌓아둔 누적 예탁금 약 1209억원을 거론하며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재원으로 활용하라고 만든 기금에 1200억원이 넘는 소방재원을 묶어두면서, 한편으로는 재정이 어렵다는 핑계로 현장 소방관들의 생명선인 노후 장비 교체 예산을 깎아버리는 주객전도의 비정상적 재정 운용"이라고 적었다. 그는 예탁금의 즉각 회수와 삭감 예산 원상복구, 기금 활용 로드맵 공개를 요구했다.
추모 예산에 대해서는 "야외광장을 가득 메웠던 도민들의 추모 물결을 단 몇십 명만 모이는 본부 대강당 약식행사로 축소시키는 것이 과연 도민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에 대한 예우인가"라고 적었다.
소방 예산 감액은 추모행사만이 아니다. 경기도의 올해 소방차량 구매계획은 103대에서 78대로 25대 줄었고, 차량 보강 예산은 211억6000만 원에서 185억1000만 원으로 26억5000만 원 감액됐다. 전문구급장비 보강비 4억 원과 구조장비 보강비 3억 원도 깎였다.
반면 소방특별회계에서 통합재정안정화기금으로 예탁하는 예산은 168억8570만 원에서 190억9360만원으로 22억790만 원 늘었다. 9월 도의회 심사 당시 누적 예탁금은 약 1209억 원이었다.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에서 누적 예탁금의 구체적인 회수·활용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예탁금은 별도의 회계 절차와 자금운용계획에 따라 관리되는 재원이다. 누적액 전액을 곧바로 차량 구매나 행사 예산으로 돌릴 수 있는 돈으로 보기는 어렵다.
경기도는 차량 예산 감액이 중앙정부의 소방안전교부세가 당초 예상보다 57억원 줄어든 데 따른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차량 구입비에서 48억8000만원의 감액 요인이 생겼으나 도비 22억3000만원을 추가 편성해 최종 감액을 26억5000만원으로 줄였다는 것이다.
추 지사는 23일 페이스북에서 국가직 소방공무원 인건비를 전액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경기도 소방공무원 인건비 1조1973억 원 중 국가 지원은 921억 원으로 7.7%이며 나머지 1조1052억 원인 92.3%를 경기도가 부담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번 추모식은 부천 도장공장 화재로 순직한 고 김진석 소방위를 떠나보낸 지 일주일 만에 열렸다. 김 소방위는 16일 화재 현장에서 진압 활동 중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7일 오전 0시 55분 순직했다.
추 지사는 21일 사고 진상조사와 화재진압 안전수칙 강화, 미신고 위험물 관리대책 수립을 지시하고 외부 전문가와 현장 소방대원이 참여하는 안전강화 태스크포스 구성을 주문했다. 소방청도 소방노조가 참여하는 22명 규모의 합동조사단을 가동해 현장 대응 과정과 위험물 저장·취급의 위법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소방차량 구매계획 축소나 추모행사 예산 감액이 김 소방위 순직의 원인이 됐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기소방은 '그대의 용기, 우리의 영원한 기억'이라는 슬로건을 이어가되 매년 새로운 주제로 추모의 의미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추 지사가 국정감사에서 제시한 격년제 추진방안과 2027년 사업비 편성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