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접었던 빅토리아 시크릿, 요즘 피드에 왜 자꾸 뜨지? [솔드아웃]

입력 2026-10-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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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거대한 날개를 단 모델들이 런웨이에 올랐습니다. 이 런웨이에는 무려 5000만달러짜리 브래지어가 등장했고요. 팝스타들의 공연까지 더해지면서 패션쇼와 콘서트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26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이야기입니다.

한때 이 브랜드의 패션쇼는 속옷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찾아보는 행사였습니다. '엔젤'로 불리는 슈퍼모델들의 워킹과 화려한 날개, 유명 가수들의 공연까지 볼거리가 가득했죠. 하지만 늘 환호가 쏟아졌던 건 아닙니다. 시청률과 매출 부진 등 다수의 악재가 겹치면서 2019년부터는 이 패션쇼가 중단되기까지 했는데요. 최근엔 또 한 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다시 돌아온 패션쇼와 엔젤, 공연과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틱톡 등 각종 SNS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입니다.

한동안 조용했던 빅토리아 시크릿은 어떻게 다시 시선을 끌고 있을까요. 화려한 무대 뒤에서 시작된 변화와 반등의 배경을 들여다봤습니다.

▲카일리 제너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의 소니 픽처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카일리 제너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의 소니 픽처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5000만달러 브라→캣츠아이 출격…올해 빅시쇼 현장은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이른바 '빅시쇼'의 올해 런웨이에는 사계절이 펼쳐졌습니다. 꽃잎과 덩굴을 닮은 장식부터 눈꽃 모양의 날개, 반짝이는 메탈릭 소재까지 계절의 변화를 의상에 담았는데요. 2007년 이후 19년 만에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쇼는 소니 픽처스 스튜디오에서 열렸습니다. 오프닝을 맡은 모델 벨라 하디드는 라임 그린색 란제리에 꽃과 덩굴로 꾸민 날개를 달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죠.

화제를 모은 건 8년 만에 돌아온 '판타지 브라'였습니다. 보석으로 장식한 초고가 속옷으로, 빅토리아 시크릿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템인데요. 2018년 엘사 호스크가 착용한 이후 런웨이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올해 카일리 제너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처음으로 빅시쇼에 오른 제너는 커다란 흰색 깃털 날개와 시어 소재의 미니스커트를 매치했죠.

주얼리 브랜드 제이콥앤코와 제작한 이번 작품의 가치는 5000만달러로 역대 판타지 브라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중앙에는 75.54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가 자리하고, 주변에는 천연 다이아몬드 4410개가 장식됐습니다. 장인 15명이 1000시간 넘게 작업했고 무게는 약 1.8㎏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보석과 귀금속으로 만들면서도 몸의 곡선과 움직임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설계됐다고 합니다.

오랜 '빅시' 팬들에게 익숙한 얼굴들도 런웨이를 채웠습니다. 아드리아나 리마와 알레산드라 앰브로시오, 캔디스 스와네포엘 등 브랜드의 전성기를 이끈 모델들이 등장했는데요. 애슐리 그레이엄과 팔로마 엘세서 등 다양한 체형의 모델, 트랜스젠더 모델 알렉스 콘사니도 함께했습니다.

음악 팬들의 시선을 붙잡은 무대도 있었습니다. '빅시쇼'는 가수들의 공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동안 정상급 가수들이 같은 무대에서 노래와 퍼포먼스를 펼치는 방식입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리아나, 레이디 가가, 마룬5, 위켄드 등 팝스타들이 등장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올해 무대에 선 캣츠아이는 젊은 소비자를 겨냥한 '핑크' 부문에서 '핑키 업(Pinky Up)'과 '애니멀(Animal)'을 선보였습니다. 다니엘라·메간·라라·윤채 네 멤버는 객석에서 등장해 공연을 시작했고 코르셋과 미니스커트, 피시넷 스타킹을 활용한 스타일링으로도 눈길을 끌었죠.

공연진도 장르를 넘나들었습니다. 컨트리 가수 메건 모로니는 커다란 핑크색 날개를 달았고, 테이트 맥레이는 붉은 란제리 스타일링으로 안무를 선보였습니다. 여기에 메건 디 스탤리언의 힙합 무대까지 더해졌죠.

▲이리나 샤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의 소니 픽처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리나 샤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의 소니 픽처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선망 식고, 날개도 접었다…빅토리아 시크릿의 굴곡

지금의 귀환을 이해하려면 빅토리아 시크릿이 무엇으로 사랑받았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속옷에 화려한 삶에 대한 선망을 입혔습니다. 완벽하게 연출한 헤어와 메이크업, 보석으로 장식한 란제리, 커다란 날개를 단 슈퍼모델들이 그 중심에 있었죠. 소비자에게 제품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브랜드를 입는 여성'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겁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제시하는 이상과 실제 속옷을 사는 여성들의 취향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편안한 착용감과 다양한 체형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동안에도 빅토리아 시크릿은 특정한 몸매와 관능적인 이미지에 무게를 뒀는데요. 에어리 등 경쟁 브랜드가 다양한 체형과 보정하지 않은 모델 사진을 앞세우면서, 빅토리아 시크릿의 성공 공식은 오히려 시대에 뒤처졌다는 비판을 받았죠.

논란을 키운 건 경영진의 태도였습니다. 2018년 당시 모회사 L브랜즈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였던 에드 라젝은 보그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모델의 쇼 출연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쇼가 '판타지'를 보여주는 무대라는 이유였는데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출연에도 회의적인 발언을 하면서 브랜드가 일부 여성만 아름다움의 기준 안에 포함한다는 비판이 급속도로 확산했죠.

관심이 식는 흐름은 숫자로도 나타났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내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TV 시청자는 2001년 약 1200만 명에서 2018년 약 33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판매 부진까지 겹치자 회사는 마케팅 방식을 재검토했고, 급기야 2019년 패션쇼를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때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광고판이었던 무대가 멈춰 선 거죠.

이후 빅토리아 시크릿은 브랜드의 얼굴부터 바꿨습니다. 2021년 축구선수 메건 라피노와 배우 프리양카 초프라 조너스, 모델 팔로마 엘세서 등이 참여한 'VS 컬렉티브'를 출범시켰는데요. 모델의 외모뿐 아니라 각자의 활동과 목소리를 앞세워 여성 소비자와의 관계를 다시 구축하려는 시도였습니다. 2023년에는 여러 나라 창작자들의 작업을 담은 영상 프로젝트 '더 투어'도 선보였고, 2024년에는 런웨이 패션쇼를 재개했습니다.

▲(출처=캣츠아이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출처=캣츠아이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빅토리아 시크릿, 다시 선망의 브랜드 될까

반등의 중심에는 2024년 취임한 힐러리 슈퍼 최고경영자(CEO)가 있습니다. 로이터 등 외신은 슈퍼 CEO가 할인을 줄이고 브랜드 고유의 섹시한 이미지를 되살려 수년간의 판매 부진을 돌파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다양한 여성을 포용하면서도 소비자가 빅토리아 시크릿에 기대했던 화려함과 선망을 다시 살리는 방향입니다.

브랜드별 역할도 명확히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섹시하고 화려하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젊은 소비자를 겨냥한 '핑크'는 대담하고 장난기 있는 분위기를 강화했습니다. 모두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각 브랜드를 선택할 이유를 구체화한 겁니다.

이와 함께 사업의 중심을 주력 상품인 브래지어에 뒀습니다. 제품 혁신과 매장에서 몸에 맞는 속옷을 찾아주는 피팅 전문성을 강조했는데요. 화려한 이미지에 끌려온 고객이 실제로 입을 제품에서도 만족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입니다. 할인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가격을 깎아 구매를 유도하는 대신 상품과 브랜드의 매력으로 제값을 받는 힘을 되찾으려는 거죠.

변화는 지표에서도 포착됐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2026 회계연도 2분기 매출은 약 16억11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0% 증가했는데요. 2분기 조정 영업이익은 약 1억2400만달러로 전년 동기(5510만달러) 대비 125%가량 늘었죠.

빅토리아 시크릿은 다양한 모델에게 날개를 달면서 브랜드 특유의 화려한 매력에 다시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오랜 팬에게는 반가운 장면을, 새로운 세대에게는 좋아하는 스타와 함께 즐길 무대까지 선사했는데요. 상품과 판매 전략을 손본 뒤 다시 펼친 날개가 일시적인 화제를 넘어 새로운 전성기로 이어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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