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영향평가 갈등 여전⋯2027년 착공 불투명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매장유산 보존 문제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둘러싼 갈등으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적 보존방안이 세 차례나 심의에서 보류된 가운데 국가유산위원회가 현지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도 종묘 경관 훼손 가능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내년 상반기 착공 목표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15일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국가유산위원회는 16일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을 방문해 매장유산 보존방안에 대한 현지 조사를 실시한다. 위원회는 현장에서 조선시대 유적의 보존 위치와 방법 등을 확인한 뒤 재심의할 예정이다.
세운4구역 매장유산 보존방안은 2024년 1월 처음 일부 보류됐다. 당시 위원회는 발견된 유구에 대한 구체적인 보존방안을 추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올해 8월에는 사업시행계획 변경이 확정된 뒤 다시 심의해야 한다는 이유로 보류했고, 9월에는 유구의 보존 위치와 방법 등을 현장에서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또다시 보류 결정을 내렸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세운4구역 약 3만2222㎡를 발굴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마을 입구에 설치했던 이문(里門)과 배수로, 건물터 등이 발견됐다. SH는 유적 일부를 이전·복원하고 지상 1층과 지하 1층에 전시공간을 마련하는 보존방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은 유적을 원래 발견된 위치에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본지에 "유적의 건물터나 배수로는 발굴 당시 위치에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원칙을 기본으로 보존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최종적으로는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일(16일) 현지 조사를 나갈 예정"이라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위원회에서 보존방안을 다시 심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세운4구역에서 발견된 이문의 역사적 가치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조선시대 이문이 발견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동물 뼈 등도 함께 발견돼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매장유산 보존 문제와 별개로 종묘의 역사적 경관을 둘러싼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세운4구역 건축물 최고 높이를 청계천변 기준 기존 71.9m에서 141.9m로 높였다. 국가유산청은 고층 건물이 종묘의 세계유산적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종묘 정전 월대와 세운4구역을 찾아 현장 시찰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의원들에게 세운4구역이 종묘의 세계유산 보호구역 밖에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 대상지는 종묘에서 약 180~200m 떨어져 있어 유산지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장을 둘러본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종묘 정전에서 앞을 봤을 때 전혀 시야를 가리는 게 없다"며 "애꿎은 주변 지역 시민에게 막대한 재산 피해가 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보호구역 밖에 있는 개발사업이라도 세계유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현장에서 "세계유산영향평가는 개발과 보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제도"라며 "개발행위를 못 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취지"라고 말했다.
양측의 갈등은 법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SH가 국가유산청의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명령에 반발해 제기한 행정소송이 21일 시작될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은 5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사업계획에 반영하라고 명령했지만, SH는 적법하게 추진 중인 사업에 대한 부당한 조치라며 맞서고 있다.
세운4구역은 2004년 정비사업이 시작된 이후 20년 넘게 착공하지 못한 상태다. 서울시 측은 사업 장기화에 따른 금융비용이 연간 약 15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6월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까지 받았지만, 매장유산 보존방안 심의와 세계유산영향평가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2027년 상반기 착공 목표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