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감사 시즌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유통 공룡'이다. 올해도 국회에서는 거대 유통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불공정 거래를 둘러싼 질타가 이어졌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통 공룡을 키운 것이 과연 기업의 힘뿐이었을까.
2012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이 도입됐다. 대형마트는 매월 이틀씩 문을 닫아야 했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에도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소비자의 발길까지 규제로 통제할 수는 없었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다고 소비자가 반드시 전통시장을 찾는 것은 아니었다. 소비자는 더 편리한 선택지를 찾아 나섰고 그사이 온라인 플랫폼이 급성장했다.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으로 유통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물론 쿠팡의 성장을 규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막대한 물류 투자와 배송 혁신이 뒷받침됐다. 다만 같은 소비자를 두고 경쟁하면서도 적용받는 규칙은 달랐다. 대형마트가 점포를 활용한 새벽배송에 제약을 받는 동안 온라인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업을 확장했다. 기존 사업자를 묶어둔 규제가 새로운 경쟁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국회에서는 새벽배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올해 8월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야간작업을 월 12회 이내로 제한하고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을 보장하도록 했다. 새벽배송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은 아니지만 관련 기업의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다만 배송기사의 소득과 소비자 편익에 미칠 영향도 함께 따져야 한다. 한편에서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기 위해 14년 된 규제를 손질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과거의 빗장을 풀면서 또 다른 빗장을 채우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간명하다.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빠르고 편리하게 구매하는 것이다. 정책이 해야 할 일은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혁신과 성장을 주문하면서 규제로 경쟁 기회를 제한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장에서 기업에 책임을 묻는 만큼 국회도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어제의 공룡을 막으려던 규제가 오늘의 공룡을 키웠다. 오늘의 규제는 또 무엇을 키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