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유병규 칼럼] 新성장동력 ‘문화자산’ 축적할 때

입력 2026-10-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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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각광받지만 사회갈등 너무 커
전시행사 아닌 선진화 전략 필요해
산업 기반 확충해 신뢰자본 키워야

세계 최고 문자로 손색이 없는 한글 창제를 기리는 한글날이 있는 10월은 법으로 정해진 문화의 달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문화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진다. 문화란 일반적으로 좁게는 문학, 음악, 미술, 공연 같은 예술 활동을 뜻하지만, 넓게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 생활양식 등을 모두 포함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아름답고 옳다고 여기며, 서로 얼마나 신뢰하고 다른 생각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도 문화다. 따라서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공연장 수나 콘텐츠 매출뿐만 아니라 국민의 교양, 관용, 공동체 의식까지 포괄해 결정된다.

문화와 경제성장은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는 밀접한 선순환 관계를 형성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과 여가가 늘고 교육·통신·교통 기반이 확충돼 문화 수요와 창작 여건이 좋아진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 독서와 예술교육 등을 통해 창의적 인재가 길러진다. 경제 재화인 상품에 문화 요소인 디자인과 스토리를 결합하면 같은 기술과 원료로도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매력적인 문화 환경과 국가 브랜드는 인재, 기업투자,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소비재와 서비스 수출을 촉진한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 궁극적으로 교양과 도덕성이 고양되어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이 경제발전의 핵심 요소로 강조하는‘사회적 자본’이 축적된다. 사회적 자본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협력 정도를 뜻한다. 금융자본이 설비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인적자본이 생산성을 높인다면, 사회적 자본은 사람들이 서로 믿고 협력할 수 있게 한다.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계약과 감시에 드는 비용이 줄고 기업 간 협업과 지식 공유가 활발해진다. 정부 정책에 대한 수용성도 높아지고 재난이나 경제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능력도 강해진다.

안타깝게도 한국 문화는 현재 영역별 부조화 상태에 놓여 있다. K팝과 영화·드라마·게임·웹툰을 중심으로 한 한류는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월한 콘텐츠 경쟁력이 곧 국민 전체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과 지역 간 문화시설과 문화 활동 기회의 격차가 존재하고, 세대와 소득 수준에 따라서도 문화 향유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신뢰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이다. 경제 규모와 문화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사회 구성원 간 신뢰와 공동체 의식은 선진국들에 비해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국회 등 공공 영역에 대한 신뢰가 너무 낮고 사회계층간 정치이념간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깊어져 국내 사회갈등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화의 달을 맞이해 전시성 행사에만 치중하기보다 국민의 광범위한 문화 참여와 사회적 자본을 높이는 보다 근본적인 ‘선진 문화 국가 전략’을 수립하길 제안한다. 전략 수립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세계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 문화 콘텐츠 산업의 기반을 보다 확충하고 견고히 하는 것이다. 국내 문화산업은 일부 스타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예술인의 1인당 평균 연소득은 국민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스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문화계 종사자들은 생계를 걱정하는 구조다. 저작권 보호와 창작 과정의 불합리한 수익 배분 구조 등을 바로잡아 재능있는 개인과 중소 사업자들 참여를 늘려 문화산업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다음으로 문화 향유의 저변을 크게 넓혀야 한다, 우선 문화의 달을 ‘전 국민 문화참여의 달’로 승화시키면 좋겠다. 10월 한 달 동안 국공립 박물관·미술관·공연장뿐 아니라 민간 문화시설까지 개방해 국민 한 사람이 적어도 하나의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문화 활동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동네 도서관과 학교, 주민센터 등을 활용해 지역 공동체 중심의 문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문화정책 목표를 문화산업 육성 차원을 넘어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의 한 방안이 세대와 계층을 연결하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일이다. 남녀 청년과 노인, 지역 주민과 이주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문화 활동이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정직성과 공정성을 존중하고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교육을 강화하고 이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 사회 구성원간 신뢰 관계와 공동체 의식을 높여야 한다. 기존 경제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인공지능 기반의 급속한 산업 혁명 시대에 한국 경제 앞날은 창의성, 신뢰, 협력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자산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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