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낮춰도 현금 없으면 그림의 떡…‘로또 청약’의 역설

입력 2026-10-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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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 드 서초 계약금·자납 중도금 7억4596만원
분양가 낮춰도 자금력 있는 당첨자에 혜택 집중
전문가 "분양가 상한제 차등 적용·시세차익 사후 관리 필요"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이투데이DB)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이투데이DB)

분양가 상한제가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제도지만, 서울 강남권에서는 오히려 자금력이 풍부한 청약 당첨자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안겨주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수억원의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당첨 기회를 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양가 상한제와 대출 규제가 맞물리면서 무주택자 사이에서도 자산 격차에 따른 청약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12일 서울 서초구 '아크로 드 서초' 입주자모집공고에 따르면 전용면적 59㎡의 최고 분양가는 18억6490만원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됐지만 계약금 20%만 3억7298만원에 달한다.

중도금은 분양가의 60%로 여섯 차례에 걸쳐 납부한다. 이 가운데 마지막 두 차례는 계약자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 최고 분양가 기준으로 각각 1억8649만원씩 총 3억7298만원이다. 계약금까지 합하면 7억4596만원으로, 취득세와 옵션 비용은 별도다. 이 돈을 당첨 직후 한꺼번에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계약금을 먼저 내고 자납 중도금은 2028년 4월과 9월에 각각 납부한다. 다만 납부 시기가 나뉘어 있어도 분양대금의 40%를 중도금 집단대출 없이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은 남는다.

입주 때는 자금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남은 잔금뿐 아니라 기존 중도금대출도 갚거나 잔금대출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수도권·규제지역의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주택가격이 15억원 이하면 최대 6억원,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면 4억원, 25억원 초과면 2억원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까지 적용되면 실제 대출 가능액은 더 줄어들 수 있다.

때문에 강남권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수억 원의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계약을 포기해야 하는 반면 자금 여력이 충분한 당첨자는 상당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 대상과 시세차익 배분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저렴한 주택 공급이라는 취지에 어울리는 지역은 분양가 상한제를 유지하고, 고가 주택이 있는 지역들은 오히려 없애는 게 맞지 않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오히려 규제지역이 되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고 규제지역이 아니면 적용하지 않는데, 이걸 거꾸로 해야 되지 않을까"라면서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곳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없어 상대적으로 비싼 금액으로 청약해야 하는 반면 자금 여력이 있는 곳에서는 로또 청약 논란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윤경·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지난해 4월 발표한 '특별공급 청약제도의 운영 실태와 과제' 보고서에서 분양가 상한제에 따른 시세차익 기대가 청약제도를 사실상 자산 배분 수단으로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연구위원은 "우위 지역은 경쟁률이 높아 당첨 확률이 낮고, 높은 분양가로 소위 금수저로 표현되는 저소득, 고자산 계층에게 특별공급의 혜택이 돌아가면서 소득재분배 효과가 미흡한 주장도 존재한다"고 짚었다.

연구진이 2020년 1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전국 1853개 단지, 약 90만 가구의 청약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과 세종의 특별공급 경쟁률은 두 자릿수를 넘었다. 연구진은 분양가 상한제에 따른 시세차익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했다.

연구진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청약 당첨 이후에도 주택의 처분가격과 시세차익을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해외에서는 공공의 지원을 통해 공급된 주택에 재판매 가격규제나 정부 지분투자 등을 적용해 최초 수분양자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퍼스트 홈즈(First Homes)' 제도를 제시했다. 최초 분양 시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한 주택을 되팔 때도 일정한 할인율을 유지하도록 해 이후 구매자 역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두 연구위원은 "해외의 자산 배분 정책은 분양 시점뿐 아니라 사후 적정 이익 분배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국내 청약제도에서도 사후 관리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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