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약물 오남용 여부 더 확인했어야”…손배 책임 30%

정상체중 여성에게 약 7년간 식욕억제제를 처방한 의사에게 환자의 추락 사망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922단독 송승용 부장판사는 사망한 A 씨의 유족이 의사 B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B 씨가 A 씨의 어머니와 언니에게 각각 9654만9335원,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A 씨는 2015년 3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B 씨가 운영하는 의원에서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펜디메트라진 성분 등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펜디메트라진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A 씨는 식욕억제제를 장기간 복용하던 중 피해망상과 환청 등 정신과적 증상을 보였고, 2022년 2월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해 치료받기도 했다. 이후 다시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고, 같은 해 11월 자택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A 씨가 처음 약을 처방받기 시작했을 당시 키 167㎝, 몸무게 62.4㎏으로 체질량지수(BMI)는 약 22.3㎏/㎡의 정상체중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펜디메트라진은 BMI 30㎏/㎡ 이상이거나 다른 위험인자가 있는 BMI 27㎏/㎡ 이상 환자에게 단기간 보조요법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은 “망인이 다중 약물 또는 기타 향정신성 물질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증적 장애를 진단받고 사망에 이른 데에는 B 씨의 과실이 적어도 한 원인이 되었다고는 볼 수 있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선 B 씨가 약제를 장기간 처방하면서 처방 및 경과 관찰에 관해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망인은 2020년 6월 8일부터 피고 의원에 내원해 여러 차례 약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했고 피고는 그때마다 새로 약을 처방해 준 것으로 보인다”며 “약물 오남용, 약물 의존성의 가능성을 상당히 의심할 만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로서는 망인을 짧은 간격으로 내원하도록 해 면밀하게 재평가하거나 약물 오남용 여부를 더 면밀히 확인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그런데 피고는 망인에게 구두로 휴약기간의 필요성이나 부작용에 관해 안내한 것으로 보일 뿐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원은 B 씨가 약제에 관한 설명의무 역시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 씨가 운영하는 의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안내문에는 식욕억제제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이 부동문자로 인쇄된 것일 뿐이고, 설명 과정에서 동반된 어떠한 표시(밑줄, 동그라미, 강조 표시 등)도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A 씨가 외부 요인으로 스트레스 받고 있었던 점 △평소 음주를 즐겨 건강 악화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이는 점 △B 씨의 과실 내용과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B 씨의 손해배상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