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정상 가격’이라는 다이어트, 시장의 체력을 놓치면

입력 2026-09-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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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빨리 빼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굶는 것이다. 먹는 양을 확 줄이면 체중계 숫자는 금세 내려간다. 하지만 지방과 함께 근육까지 빠지면 몸의 기초체력도 떨어진다. 당장의 숫자에 집착한 다이어트가 결국 ‘요요’를 부르는 이유다.

최근 밀가루·설탕 등 식품소재 업계를 취재하면서 가격 정책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와 여당은 28일 담합으로 왜곡된 시장가격을 바로잡기 위해 공정거래법상 시정조치의 한 유형으로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으로의 가격재결정명령’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반복 담합 사업자에 대한 등록취소·영업정지 제도 도입 등 제재 강화 방안도 함께 추진한다.

담합으로 가격을 올려 경쟁을 왜곡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다. 취재 과정에서도 담합 제재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상 가격’은 도대체 얼마인가.

밀가루와 설탕 가격은 단순히 원재료 시세만 보고 결정되지 않는다. 국제 원맥·원당 가격과 환율은 물론 물류비와 제조비, 재고, 계약조건, 설비 가동률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원당처럼 선물 등을 통해 수개월 전에 구매하는 원재료는 국제 시세가 오늘 떨어졌다고 제품 가격이 내일 바로 내려가는 구조도 아니다.

결국 관건은 담합으로 발생한 가격 상승분과 이후 정상적으로 발생한 비용 변동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다. 담합 이전 가격을 단순한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그 사이 달라진 원재료 가격과 환율, 인건비, 물류비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주장하는 원가 상승분을 모두 인정한다면 가격재결정명령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식품소재 업계가 우려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가격재결정명령의 기준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으면 기업이 정상적인 가격 조정에도 신중해지면서 거래처와의 협상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가 상승분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수익성뿐 아니라 설비 유지·보수와 신규 투자 여력에도 부담이 쌓일 수 있다.

여기서 묘한 역설이 생긴다. 가격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가격을 움직이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을 다시 올릴 때마다 그 근거를 더욱 촘촘히 따져야 한다. 원가 상승분을 어디까지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면 가격 조정 자체를 미루거나 최소화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실제 이런 현상이 어느 정도 나타날지는 향후 마련될 구체적인 기준과 제도 운영 방식에 달려 있다.

다이어트의 목표가 체중계 숫자 하나를 낮추는 데 있지 않듯 시장 정책의 목표도 가격표의 숫자를 낮추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담합으로 붙은 ‘군살’은 빼되 정상적인 원가 상승과 투자 여력이라는 ‘근육’까지 걷어내서는 곤란하다.

결국 가격재결정명령의 성패는 가격을 얼마나 많이 낮추느냐보다 무엇이 ‘정상 가격’인지를 얼마나 정교하게 가려내느냐에 달렸다. 시장에도 오래 버틸 체력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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