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문래동 기계금속 소공인의 가업승계가 숙련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창업자의 경험에 머물러 있던 견적·가공조건·거래처 정보를 데이터로 축적해, 후계자가 생산 현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문래기계금속소공인특화지원센터는 ‘2026 문래 청년소공인 가업승계 지원사업’을 통해 삼호정밀을 지원했다. 서울소공인협회와 한국가업승계협회가 업무협약(MOU)을 토대로 교육과 멘토링, 기업별 1대 1 컨설팅을 연계했다. 사업 총괄 프로젝트매니저(PM)는 김봉수 한국가업승계협회 이사장 겸 박사가 맡았다.
삼호정밀은 절삭가공과 주문형 정밀가공을 수행하는 문래동 제조기업이다. 박재규 대표는 숙련기술자와 지속적인 설비투자, 난도가 높은 작업에도 해법을 찾아내는 현장 대응력을 회사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삼호정밀의 승계는 대표 개인의 기술뿐 아니라 임원과 숙련직원이 축적한 난가공 경험, 설비별 특성, 가공조건과 품질 판단을 함께 이전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직 기술의 승계’에 가깝다.
가장 큰 과제는 과거 작업한 품목을 다시 가공할 때 사용한 기계와 공구, 가공조건 등을 곧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가업승계협회는 컨설팅 과정에서 이를 핵심 승계 과제로 판단하고, 품번과 거래처, 도면, 설비·공구, 가공조건, 견적 및 품질 이력을 연결해 기록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AI 전환(AX)과 디지털 전환(DX)도 활용했다. 숙련자가 가공 방식과 견적 판단 근거를 음성으로 설명하면 AI를 활용해 이를 문서화하고, 동일·유사 품목을 수주했을 때 과거 작업정보를 검색하는 방식이다. 다만 치수와 공차, 소재·공구 등 생산 핵심정보는 사람이 최종 검증하도록 했다. AI를 숙련기술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닌, 경험을 보존하고 재활용하는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삼호정밀 후계자 박 씨는 익혀야 할 분야로 기술과 견적을 꼽았다. 견적은 단순한 가격 산정이 아니라 작업 난도와 투입 설비, 원가, 외주비, 거래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업무다. 향후 생산현장을 직접 지휘하고, 자체 제품을 개발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경영 역할은 단계적으로 이양하기로 했다. 생산일정과 거래처 이력 관리, 견적 초안을 맡긴 뒤 현장지휘와 고객 대응, 손익과 원가를 관리하는 ‘숫자경영’으로 책임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기술 전수와 함께 숙련기술자를 존중하고 고객과 직원의 신뢰를 얻는 경영능력도 승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숙련 인력의 고령화도 과제다. 기술자들이 퇴직한 뒤 경험까지 사라지면 설비가 남더라도 생산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어서다. 이에 견적과 가공조건의 데이터화, 후계자의 현장 리더십 확보가 삼호정밀의 주요 승계과제로 설정됐다.
김 박사는 소상공인의 가업승계를 상속·증여세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자산 규모가 크지 않은 소상공인은 세 부담보다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과 거래처, 고객 신뢰, 견적 기준과 경영 판단 등 무형자산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앞서 한국가업승계협회는 선풍 ENG와 삼호정밀 2개 기업의 가업승계도 컨설팅했다. 선풍ENG는 창업자의 제작 판단과 후계자의 컴퓨터수치제어(CNC)·디지털 역량 결합에, 부영금속은 소재 판단과 거래처 관리, 수금·재고 운영에 초점을 맞췄다.
2024년 소상공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주요 11개 업종의 소상공인 사업체는 613만4000개, 종사자는 961만명에 이른다. 숙련기술과 거래관계가 승계되지 못한 채 사업체가 폐업하면 지역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 소상공인법은 백년소상공인 지원사업에 사업승계와 후계인력 양성을 포함한다. 제조업을 영위하며 요건을 충족한 소공인은 중소기업 혁신바우처를 활용할 수 있다. ‘2026년 중소기업 혁신바우처 사업 2차 지원계획’은 경영·기술전략 분야 지원 내용에 가업승계 컨설팅을 명시했다. 2027년도 혁신바우처 사업 공고는 11월 예정돼 있다.
업계에선 승계와 관련해 일반 소상공인에게도 교육과 멘토링, 기업별 현장진단, 후계자 실행을 연결하는 지원체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박사는 "문래에서 적용한 현장형 모델을 정부 사업과 연결해 전국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며 "가업승계를 가족기업의 소유권 이전에 국한하지 않고 숙련기술과 거래처, 사업 경험과 일자리가 폐업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막는 산업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