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경기남부경찰청은 상품권 유통업체로 위장해 범죄수익 약 934억원을 세탁한 혐의로 일당 7명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거나 돈을 인출·전달하는 조직과 별도로 여러 사기조직에서 들어온 돈을 현금이나 수표 등으로 바꿔 돌려주고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 자금세탁 조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범죄의 구조는 점차 세분화되고 있다. 과거 하나의 총책 아래 전화번호를 변조하는 ‘전화집’, 수거책을 운용하는 ‘출집’, 대포계좌를 공급하는 ‘장집’, 자금을 환전하는 ‘환전집’ 등이 역할을 나눴다면, 최근에는 각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들이 서로 독립된 상태에서 필요에 따라 범행수단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거래관계에 가까운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외주화’에는 적발과 수사 위험을 분산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하나의 조직이 피해자 기망부터 계좌 확보, 현금 인출, 자금세탁까지 모두 담당하면 어느 한 단계가 적발됐을 때 수사가 총책과 조직 전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각 단계를 서로 독립된 조직이 담당하면 한 조직이 검거되더라도 다른 조직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범행에 필요한 기능을 외부 조직으로 분산함으로써 조직 전체가 한꺼번에 드러날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범죄의 각 단계에 특화된 조직들이 등장하면 전문 자금세탁 조직이 취급하는 범죄수익의 규모가 커질 수 있다. 특정 보이스피싱 조직 한 곳의 돈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보이스피싱이나 투자리딩방 사기조직의 돈을 한꺼번에 세탁하기 때문이다. 개별 사기조직의 피해액은 수억 또는 수십억 원이라 하더라도 여러 조직의 돈이 한곳에 모이면 하나의 세탁조직이 취급하는 자금은 수백억원에 이를 수 있다.
나아가 자금세탁의 특성상 범죄수익은 여러 계좌와 조직을 거치며 반복적으로 이동하고, 서로 다른 자금과 합쳐졌다가 다시 분산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해당 조직이 직접 세탁하지 않은 범죄수익까지 자금 흐름에 섞이는 경우가 있고, 이를 사후적으로 정확히 분리해 내기도 쉽지 않다. 그 때문에 계좌상 거래규모는 실제 해당 조직이 세탁한 범죄수익보다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으며, 수사와 재판에서는 전체 자금 흐름 가운데 해당 조직이 실제 취급한 범죄수익과 그로 인해 얻은 이익이 얼마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도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FATF는 2026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문 자금세탁업자가 특정 범죄조직 하나에 종속되기보다 여러 조직범죄집단의 자금을 처리하는 형태로 활동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를 ‘서비스형 자금세탁(Money Laundering as a Service)’라고 표현하면서 자금세탁 기능의 외주화와 전문화로 하나의 네트워크가 대규모 자금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상업적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조직이 서로 독립돼 있다고 해서 형사책임이 단절되거나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기범행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범죄수익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 취득이나 처분 사실을 가장하거나 자금의 출처를 은닉하면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른 별도의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
대법원은 올해 초 상품권 업체를 운영하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의뢰를 받아 범죄수익을 세탁하고 수수료를 받은 피고인들에 대해 자금세탁자가 범죄단체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라 해당 범죄수익 등을 몰수·추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보이스피싱 범죄단체의 조직이나 활동 자체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그 범죄수익을 알면서 수수·은닉·가장했다면 별도의 형사책임을 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취득한 범죄수익 등도 몰수·추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결국 자금세탁 조직이 원래의 보이스피싱 조직과 별개의 조직이라는 사정만으로 범죄수익에 관한 책임까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형사책임의 범위는 더 넓어질 수 있다.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인식하면서 반복적으로 범행에 필요한 자금세탁 수단을 제공하고 역할을 분담했다면 구체적인 공모관계에 따라 사기죄의 공동정범이나 방조범 성립 여부도 문제될 수 있다.
외주조직 자체에 범죄단체 관련 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다. 전화집이나 장집, 자금세탁 조직 등이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더라도 각 조직 자체가 사기 범행을 목적으로 일정한 지휘·통솔체계와 역할분담, 계속성을 갖췄다면 형법상 범죄단체 등의 조직·가입·활동죄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
허윤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범행의 각 단계를 외주화하면 적발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지만 형사책임까지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히 여러 범죄조직의 돈을 전문적으로 세탁한 경우 원범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범죄수익은닉에 대한 처벌과 범죄수익의 몰수·추징 대상이 될 수 있고, 구체적인 공모관계와 조직 형태에 따라 사기 공범이나 범죄단체 관련 책임까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도움]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 수사대응팀·압수수색대응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방위사업청 옴부즈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서울특별시의회 입법법률고문, 언론중재위원회 자문변호사, 기획재정부 사무처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