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원가 적정성·사주 일가 재산 형성과정 중점 점검”

원가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면서 사주가 사적으로 쓰는 슈퍼카를 법인 명의로 사고, 가족회사 비용까지 떠안아 이익을 줄여 신고한 업체들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는다. 추석을 앞두고 농축산물과 가공식품부터 외식·배달·패션업체까지 조사 대상에 오른 41곳의 탈루 혐의 금액은 약 1조원에 달한다.
국세청이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추석 명절을 앞두고 원가를 부풀려 소비자에게 물가 부담을 전가하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가 있는 생활밀접 업종 사업자 41곳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농축산물 생산·유통업체 23곳, 가공식품·외식 프랜차이즈·배달 플랫폼 16곳, 패션 플랫폼 2곳이다. 이들의 탈루 혐의 금액은 약 1조원에 달한다.
특히 국내 음식 주문·배달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배민)과 풀무원, 무신사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내세운 비용이 실제 사업에 필요한 지출이었는지, 사주 일가에 이익을 넘기기 위해 부풀린 비용인지가 이번 조사의 핵심이다.
이성글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들은 원재료비 상승 등 대외 불안 요인에 원가 절감으로 대응하기보다 오히려 물건 가격을 높였다”며 “거짓 세금계산서를 받거나 허위 원가를 계상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고 말했다.

소비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업계에선 입점업체에 비용 부담을 지우면서 세금을 탈루한 혐의가 드러났다. 배민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배민은 국내에서 벌어들인 약 1조원의 이익을 독일 모회사로 보내는 과정에서 1000억원대 세금을 내지 않은 역외 탈세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 법인이 해외 모회사에 배당·이자 등을 지급하면 국내에도 원천징수 의무가 생기지만 여러 방식을 동원해 이를 회피한 것으로 국세청은 파악했다. 여기에 더해 배민은 해외 관계사에 업무지원 용역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을 부당하게 공제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먼저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3곳에서는 가맹점주와 소비자에게 원가 부담을 떠넘기면서 사주 일가의 사익을 챙긴 혐의가 포착됐다. 한 가맹본부 사주는 직원 명의로 가맹점을 운영해 소득을 분산하고, 한 대당 수억원에 달하는 슈퍼카 3대를 법인 명의로 취득해 사적으로 사용했다. 이 가맹본부는 가맹점 인테리어 협력업체에서 받은 감리용역 대가와 리베이트를 숨긴 혐의도 받는다.
전국에 가맹점 2000여곳을 둔 다른 가맹본부는 사주의 개인 지출을 가맹점주 지원 비용으로 둔갑시켰다. 사주 자녀가 지배하는 법인에는 유원지 안의 알짜 직영점을 무상으로 넘기고 재료까지 싸게 공급하면서 손실을 떠안기도 했다.

관계회사에 이익을 넘기거나 원가를 부풀린 혐의는 가공식품업체 12곳에서도 포착됐다. 코스피 상장사인 풀무원은 사주 일가가 지배하는 관계회사의 경비를 대신 지출하거나, 국외 관계사에 거액의 금전을 지원하고 이자를 받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최근 제품 가격을 인상한 소스·만두류 제조업체 A사는 사주 자녀가 지배하는 법인의 물류센터 사용료를 대신 부담했고 퇴직 임원이 설립한 특수관계법인에는 수수료를 과다 지급해 이익을 빼돌렸다. 사주 자녀가 본부장으로 근무하는 해외 현지법인에 투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보내 역외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도 드러났다.

명절 밥상에 오르는 농축산물의 생산·수입·유통 단계에서도 탈루 혐의가 확인됐다. 이 분야 조사 대상은 계란 생산농가 11곳과 곡물·과일·육류 수입·유통업체 12곳이다. 조사 대상 계란 생산농가들은 3~5년에 걸쳐 수십억원대 수익을 축소 신고한 혐의를 받는다. 일부 농가는 거래처에 계산서를 주고받지 않는 무자료 거래를 요구하고, 판매대금을 사업용이 아닌 계좌로 받아 숨겼다. 가족이 대표인 농업회사법인에 산란용 병아리를 시가보다 싸게 넘겨 이익을 나누거나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수입금액에서 빠뜨린 사례도 있었다.
대표 배우자 명의로 실체가 없는 양계장을 만들어 비과세 규정을 악용한 농가도 있었다. 농어민의 축산소득에 적용되는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고 매출을 분산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혐의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는 제3자에게서 사들인 병아리를 배우자 명의의 양계장에서 매입한 것처럼 거짓 계산서를 주고받기도 했다.
수입·유통 단계에서는 소비자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한 관세 혜택이 사익 추구에 이용됐다. 할당관세율 0%를 적용받아 돼지고기를 수입한 한 업체는 거래 중간에 대표 자녀 명의의 유령업체를 끼워 넣어 유통마진을 챙겼다. 이후 해당 유령업체를 단기간에 폐업하는 방식으로 할당관세 혜택을 가로챘다.

관세 혜택을 더 받으려고 위장업체를 동원한 경우도 있었다. 참깨 등을 수입하는 업체는 낮은 관세가 적용되는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을 추가로 확보하려고 위장업체를 세우고 매출을 분산한 혐의를 받는다. 실제 거래 없이 곡물을 매입한 것처럼 거짓 계산서를 받아 원가를 부풀렸으며, 대표 배우자는 법인자금을 빼내 아파트를 취득했다.
무신사 등 패션 플랫폼 2곳은 입점업체에 높은 수수료를 적용하거나 가격을 기습 인상한 업체들로, 변칙적인 회계 처리를 통한 매출 누락 혐의가 포착됐다. 특수관계법인에 광고비와 용역비를 과다 지급하거나 재고를 비싸게 사들여 원가를 부풀린 혐의도 확인됐다. 법인 명의로 고가 아파트를 빌려 사주가 개인적으로 거주한 사례도 드러났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가격 인상의 근거가 된 비용부터 사주 일가로 흘러간 자금까지 들여다볼 방침이다.
이 국장은 “생산원가의 적정성과 거래처와의 정상 거래 여부, 법인자금 유출로 부를 축적한 사주 일가의 재산 형성과정을 중점 점검하겠다”며 “차명계좌를 통한 수익 은닉이나 거짓 세금계산서 수수, 명의대여 등 조세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즉시 조세범칙사건으로 전환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