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여름에게 작별을 고하니 한 줄기 쓸쓸함이 스친다. 수박 몇 통과 황도 두 상자, 소설 대여섯 권. 이것에 기대어 기신기신 여름나기를 했다. 이 여름이 지난 먼 훗날, 우리는 경주의 왕릉에서 만난 여름의 빛, 부산 기장 바닷가에서 묻혀온 모래알들, 달콤한 복숭아의 맛, 에어컨이 가동되는 동네카페에서 읽은 책의 구절을 겨우 떠올릴 수 있을 테다.
우리는 여름마다 여행을 떠났다. 청탁받은 원고를 부지런히 쓰고, 그렇게 모은 돈을 여행비에 보탰다. 권태와 일상의 노릿함에서 지쳐 저 먼 도시를 그리워한다. 드립커피를 마시며 듣는 쇼팽의 피아노곡에 안온함에 만족한다면 낯선 도시를 그리워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낯선 여행지에서 이러저러한 난관을 겪는다. 여행이란 실수들과 시행착오, 뜻밖의 물건 분실 따위로 겪는 고생을 스스로 사는 일일지도 모른다. 여행의 효용감은 여행 뒤에야 느낄 수 있을 테다. 긴 여행에 지쳐서 돌아올 때쯤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낯설어진 스스로의 모습에 놀란다.
몇 해 전 여름, 우리 여름의 휴가지는 베를린이다. 왜 베를린이었는지를 딱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해 여름 서울이 그랬듯이 베를린도 무더웠다. 우리는 저녁 무렵 한 손에 생수를 들고 베를린 거리를 걸었다. 베를린 미테구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 한낮에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저녁에는 노트를 꺼내 몇 줄의 글도 끼적이었다. 그리고 베를린의 동물원과 벼룩시장, 유태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뮤지엄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베를린의 공원에 만개한 붉은 여름꽃은 아름다웠다. 폭염이 한창인데 나무 그늘에서 한 떼의 젊은이들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분수대 물줄기 아래에서 예닐곱 살쯤 되는 아이들이 발에 스프링 달린 듯 뛰며 놀았다. 분수대 안에서 물세례를 받으며 깔깔대는 아이들은 얼마나 경이롭고, 공중에서 비산하며 여름의 빛을 머금은 물방울들은 얼마나 찬란하게 반짝이었던가!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제 안에 생장점을 품고 자라며 낡은 세상을 쇄신한다. 벤치에서 이 명랑한 존재를 바라보는 젊은 엄마들의 눈동자는 생기로 넘쳤을 테다.
팬데믹 시절이 오자 우리는 여행을 멈췄다. 낯선 도시의 길을 헤매며 영혼이 새롭게 빚던 시간도 멈췄다. 그 대신 우리는 한낮의 동네카페에 나가 소설을 읽고, 저녁엔 거실에서 짠 옥수수와 달콤한 즙이 많은 황도를 베어 먹고, 고양이들과 한 침대에 누워 순한 잠을 청했다. 어린 조카들은 텃밭 옥수수들처럼 키가 쑥쑥 컸지만 우리 소규모 생은 늘 고만고만했다. 어느 날 머리 위에서 일렁이던 빛의 향연이 끝나면서 여름은 막을 내린다. 한 계절을 떠나보낼 때 우리 안에서 멜랑콜리가 폭발한다. 우리는 한 계절을 이겨낸 공훈으로 작은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꿈과 실패를 딛고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무명 옷감을 덧대고 잇는다고 그것이 비단이 될 수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서 돌아올 여름을 기다릴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