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가그랜드디자인’ 구상 실현하려면

입력 2026-09-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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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말 정부가 발표한 ‘메가 클러스터’는 영호남을 하나의 산업 벨트로 다시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광양과 군장을 축으로 반도체와 조선·이차전지·바이오를 남해안 일대에 배치한다는 계획에 주요 기업이 호응하면서 남부권을 다시 그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녹슬어 가는 산업’을 걷어내고 신산업으로 지역을 되살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메가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먼저 짜야 할 것은 ‘국가 그랜드 디자인’이다. 세대를 두고 진행될 국토 대변혁은 기존 노후산업 기반을 쇄신하는 브라운필드와 백지 위에 새 판을 짜는 그린필드가 정교하게 맞물려야 하는 고난도 ‘블루필드’ 작업이다. 몇 년 뒤 비판을 감수할 용기 없이는 결코 추진하기 어려운 담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해수부’ 이전 … 국가기능 재편 첫발

우리의 산업 환경은 이미 수도권 선호가 극에 달했고, 충청권 확산도 사실상 일단락된 상태다. 늦었지만, 이제는 ‘녹슬어가는’ 남부권을 ‘인근’에서 직접 챙겨야 할 때다. 정책 헤드쿼터가 멀리 떨어진 채 ‘서울발 행사와 홍보’에 치중한다면 ‘알맹이 없는 구호’만 남발된다. 정확하고 속도감 있는 집행이 절실한 시점에 여전히 분위기에만 의존하는 ‘바이브 코딩’ 식 정책 추진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지금이야 대통령 리더십의 드라이브에 따르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벌써 일부 부처에서는 메가 프로젝트 관련 기초 문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방만함과 복지부동이 감지된다. 이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예측 시장인 ‘폴리마켓’에 부친다면 부정적 시그널이 우세할 가능성이 짙다.

정부조직법을 오랜 기간 방치했던 탓에 법과 조직, 인력을 동시에 재배치하는 일은 고난도의 작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으로 국가 기능 재편의 의미 있는 첫발을 뗐다. 이제 국토 변혁의 다음 타자로 산업과 기후·에너지를 올려놓아야 한다. 대외 협상을 위한 ‘통상’ 기능은 서울·세종에 남기더라도, 산업 정책 본체가 광양·군장 축으로 이동하면 투자 승인과 소재·부품 육성, 규제 혁파 같은 산업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현장 인근에서 유기적 한 덩어리로 작동할 수 있다. 선언적 구호를 실행력 있는 국토 변혁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 전제다.

아울러 기후에너지환경 부처를 이 판에 결합하는 구상 역시 후순위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요구가 거세지고 기후·에너지 정책이 산업정책의 심장이 된 작금의 현실에서, 전력망과 산업용수는 첨단전략산업의 생사를 가르는 절대적 인프라다.

현장에서는 ‘전력이나 물은 정부가 알아서 해 주겠지’라며 무작정 입주를 선언했다가 조건이 안 맞으면 발을 빼는 무책임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즉흥적으로 정책을 던지고 정권 후반기에 표류하게 두면 결국 빠져나오기 힘든 정책적 함정에 갇히고 만다. 판단 주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산업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속도와 정밀도가 확연히 갈린다. 컨트롤타워인 부처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산하기관만 내려보낸다면 현장의 볼멘소리를 잠재울 수 없다.

산업과 기후 부처 남부 배치로 이어져야

대통령 세종 집무실 완성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산업과 기후·에너지 정책 컨트롤타워를 남부 거점으로 ‘전진 배치’하는 결단이 더해질 때 비로소 완전한 그랜드 디자인이 성립될 수도 있다. 정치·행정의 세종, 금융·정보통신기술(ICT)의 수도권, 첨단 제조·에너지의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삼각 축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부산에 해양수산부가 안착한 지금, 남부권에 산업과 기후·에너지 기능을 과감히 결합하는 재편이야말로 국가 대개조를 완성하는 전향적 액션 플랜이다. 조직 재구조화의 정치적 부담을 딛고 이러한 변혁을 결행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다음 세대에 완전히 새로워진 대한민국 산업 지도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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