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새로 온 환자의 검사지를 넘기다가 그 문장 앞에서 손을 멈췄다. 예상대로였다. 쉰을 갓 넘긴 회사원의 손글씨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갈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볼펜 끝으로 그 줄을 톡톡 두드리다가, 문득 오래된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공의 시절, 나 역시 같은 검사지를 받은 적이 있다. 동료들과 서로의 답안을 채점해주며 장난삼아 써 내려가던 그 문장 앞에서, 나 또한 망설임 없이 “공부”라고 적었다.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다시 젊어지는 상상 속에서조차 사랑도, 여행도, 용서도 아닌 ‘공부’를 떠올렸다는 사실이.
창밖 병원 앞 가로수가 초록을 벗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환자들은 대부분 시험과 등수, 승진과 성공이라는 하나의 길만을 걸어온 이들이다. 그들의 우울과 불안은 종종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났다는 자책에서 비롯되곤 했다. 다시 젊어진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물음 앞에서마저, 그들은 지나온 길을 더 완벽히 걷는 상상밖에 하지 못했다.
문득 나 자신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이십 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여전히 공부를 더 하겠다고 말할 것인가. 오래 침묵한 끝에 적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래 마주 앉아 있을 것이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이유 없이 걸어볼 것이다.” 그러나 써 놓고 보니, 어딘가 가식처럼 느껴졌다. ‘나도 결국 전형적인 한국인이었구나.’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나는 언제쯤 이 공부라는 강박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 아직 그 그늘 아래 있지만, 청소년기보다는 조금 벗어난 듯도 하다. 그러나 그 짐을 어느새 자식들 머리 위에 옮겨 놓은 건 아닌지,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옆으로 걷는 게가, 다른 게에게 옆으로 걷지 말라 하는 격이구나.’진료실을 나서는 환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나도 역시, 그래요.’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