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이 키워온 지역 거점항공사 에어부산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상황에 놓이면서 부산 정치권이 통합 진에어 본사의 부산 이전과 가덕도신공항의 실질적인 ‘대한민국 세컨드 허브’ 구축을 요구하고 나섰다.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서울이 통합되면서 진에어가 존속하고 에어부산은 소멸하는 구조가 확정된 만큼, 부산에 남아야 할 것은 ‘에어부산’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지역 항공산업의 실질적인 기능과 일자리라는 주장이다.
부산 지역 국회의원들은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며 “통합 진에어 본사를 부산에 유치하고 가덕도신공항을 실질적인 대한민국 세컨드 허브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은 산업은행의 과거 약속이다.
산업은행은 2020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LCC 3사 통합을 통해 ‘지방공항을 기반으로 한 세컨드 허브’를 구축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8000억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투입했다. 현재도 한진칼 지분 10.58%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부산 국회의원들은 산업은행에 “2020년 약속했던 세컨드 허브 구축 계획이 지금도 유효한가”라고 공개적으로 물었다.
유효하다면 어디에,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기업이 결정할 문제라는 말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을 향한 요구도 분명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해 3월 통합 진에어가 부산에서 에어부산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부산 정치권은 이제 그 발언에 담긴 ‘부산에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단순히 본사 주소나 간판만 부산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영 기능과 노선 기획, 항공기 기단, 운항과 정비, 지역 고용까지 함께 부산에 와야 실질적인 지역 거점항공사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부산 국회의원들은 이날 세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산업은행은 2020년 약속했던 지방공항 세컨드 허브 구축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
둘째,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통합 진에어 본사의 부산 이전과 실질적인 부산 거점항공사 구축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국토교통부는 합병 절차가 모두 끝나기 전에 산업은행·대한항공·부산시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즉시 가동해야 한다.
특히 가덕도신공항을 중심으로 부산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항공 관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항공사와 공항, 지역산업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게 부산 정치권의 판단이다.
부산 국회의원들은 이재명 정부가 지방 주도 성장과 ‘5극 3특’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항공산업에서도 수도권 집중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에어부산의 소멸을 단순한 기업 간 합병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에어부산이 사라진 자리에 통합 진에어가 들어오더라도 부산의 항공산업 기반까지 함께 사라진다면 ‘세컨드 허브’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부산 정치권은 이에 따라 부산시와 지역 상공계, 여야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부산의 하늘길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며 “부산 지역 국회의원과 부산시, 상공계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에 시간표를 제시했다.
“산업은행은 2020년에 약속했습니다. 조원태 회장은 2025년에 말했습니다. 지금은 2026년 8월 25일입니다.”
이어 “이제는 약속을 계획으로, 계획을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부산의 항공산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통합의 진짜 시험대는 에어부산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느냐가 아니다.
부산에 항공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킬 실질적인 권한과 기능, 그리고 일자리가 남느냐의 문제다.
가덕도신공항이라는 새로운 공항을 앞두고도 정작 그 공항을 기반으로 성장할 항공사의 핵심 기능을 수도권에 남겨둔다면 부산은 또다시 ‘공항은 지방에, 결정권은 수도권에’라는 오래된 구조를 반복하게 된다.
에어부산의 소멸을 부산 항공산업의 끝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통합 진에어를 통해 부산을 대한민국 제2의 항공 거점으로 도약시키는 전환점으로 만들 것인지 이제 산업은행과 대한항공, 정부가 답해야 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