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광복절은 '후손의 시간' [해시태그]

입력 2026-08-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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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이름보다 선명해진, 후손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
하영 증조부 친일 행적 ‘파묘’…독립유공자 후손은 시구·타종·방한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우리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혹은 큰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외증조할아버지까지 이어지는 그 끝에서 무엇을 찾으셨나요?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둔 8월 둘째 주, 오래 묻혀 있던 조상들의 이름이 잇따라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뒤늦게 확인한 배우는 그동안 가족의 자랑처럼 소개해온 일을 사과했죠. 친일 인사의 후손임을 먼저 고백한 가수의 가족사도 다시 소환됐습니다. 한편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배우는 광복절 야구장 마운드에 오르고, 또 다른 후손들은 보신각의 종을 울리는데요.

올해 광복절은 역사의 중심에 있던 인물뿐 아니라 그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들을 바라보게 했죠. 이제는 ‘후손의 시간’입니다.


(출처=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출처=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시작은 배우 하영의 가족 이야기였는데요. 하영은 7일 방송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자신이 4대째 의료인 집안 출신이라며 증조부를 소개했습니다.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한양에 서양식 병원을 열었고 고종을 치료했다는 내용이었죠. 하영은 이전 방송과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가족사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러자 온라인에서는 하영의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이며, 그에게 친일파 행적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죠.

소속사는 10일 안상호가 하영의 증조부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친일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가 하루 만인 11일 입장을 뒤집었습니다. 추가 확인 결과 안상호가 1916년 친일 성격의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한 기록을 확인했다며 “충분한 확인 없이 잘못된 입장을 전달했다”고 사과했는데요.

안상호가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한집에서 생활하는 ‘일선동체’ 방안을 거론한 기록도 다시 소환됐습니다.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등재자는 아닌데요. 하지만 사전 편찬에 참여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의 평가는 달랐는데요. 방 사무국장은 13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상호의 행위가 적극성과 반복성 측면에서 등재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확인된 기록을 종합하면 친일을 한 인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죠.

결국, 하영은 12일 자필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그는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며, 그런 상태에서 증조부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고 말이죠. 이어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며 후손으로서 사죄한다고 밝혔습니다.


▲가수 전범선(사진 왼쪽), 배우 하영. (출처=전범선, 하영 SNS)
▲가수 전범선(사진 왼쪽), 배우 하영. (출처=전범선, 하영 SNS)


연예계에서 친일 인사와의 가족 관계가 불거진 것은 처음이 아닌데요. 강동원은 2017년 외증조부 이종만의 친일 행적과 관련 게시물 삭제 요청을 사과했습니다. 이지아도 지난해 조부 김순흥의 행적을 확인한 뒤 사과하며, 일제강점기에 취득한 재산은 국가에 환수돼야 한다고 밝혔죠. 전범선은 4월 외가 5대조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인직이라고 먼저 공개했습니다.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활동 중 뒤늦게 가족사를 알게 됐다는 설명으로, 하영 논란 이후 다시 주목받았는데요.

조상의 잘못을 후손의 죄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연좌제식의 비난이 정당화될 수도 없는데요. 다만 조상의 이름을 자신의 권위나 가족의 명예로 꺼냈다면, 그 이름에 붙어 있는 불편한 기록까지 확인할 책임이 생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죠.

같은 시기 독립운동가의 이름도 연예계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13일 배우 박환희가 광복절인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 앞서 시구한다고 발표했는데요. 박환희는 독립운동가 하종진 선생의 외손녀입니다.


▲배우 박환희 (사진제공=LG 트윈스)
▲배우 박환희 (사진제공=LG 트윈스)


하종진 선생은 1919년 경남 함양군 안의면의 독립만세시위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며 참여했는데요. 1922년 대구고보 맹휴운동을 주도했고, 이듬해에는 민족 차별에 항의하는 경성전차회사 파업을 이끌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습니다. 1925년에는 비밀결사 진우연맹을 조직해 일제 주요 기관에 대한 의열투쟁을 계획하다 체포됐는데요.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죠.

독립운동가 후손 연예인이 기념일의 무대에 서는 일은 꾸준히 이어져 왔는데요. 배우 한수연은 의병장 김순오 선생의 외증손녀라는 가족사를 알리고 보훈 행사에 참여해 왔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종손인 배우 윤주빈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심훈 선생의 옥중편지를 낭독했죠. 독립유공자 홍창식 선생의 딸인 뮤지컬 배우 홍지민도 2018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유족들과 애국가를 불렀는데요. 독립운동가 신영호 선생의 외손자인 방송인 배성재 또한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개선 캠페인 내레이션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이는 단순 연예인의 행사장 참석이 아닌데요. 이들의 노래와 낭독, 시구를 통해 한 독립운동가의 생애가 다시 소개되기 때문이죠.


(사진제공=서울시)
(사진제공=서울시)


보신각에서도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광복의 순간을 알리는데요. 서울시는 15일 오전 11시 30분 보신각에서 ‘광복의 소리, 미래를 깨우다’를 주제로 타종행사를 엽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9명과 서울시장, 서울시의회 의장 등 11명이 3개 조로 나뉘어 모두 33번 종을 울리죠. 김상권 선생의 자녀 김순희 씨와 항일 비밀결사 ‘비밀동지회’를 조직한 서달수 선생의 자녀 서동흡 씨 등이 참여합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21명도 한국을 찾았는데요. 미국과 중국 등 5개국에서 온 독립유공자 15명의 후손으로, 10일부터 16일까지 현충원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기념관 등을 방문하고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합니다. 1995년 시작된 초청사업을 통해 지난해까지 21개국 후손 1013명이 방한했죠.

후손들은 12일 독립기념관에서 선조들의 독립운동 기록 15점을 살펴봤는데요. 김동진 선생과 손병석 선생의 후손은 가족이 보관해 온 관련 기록을 기증하며 사료를 공공의 역사로 돌려놨습니다.


▲2025년 서울시 광복절 보신각 타종 행사 모습. (사진제공=서울시)
▲2025년 서울시 광복절 보신각 타종 행사 모습. (사진제공=서울시)


후손을 향한 관심이 기념식과 무대에만 머무는 것은 아닌데요. 가수 션과 한국해비타트가 진행하는 ‘815런’은 참가비와 후원금을 독립유공자 후손의 주거환경 개선에 사용합니다. 올해로 7회를 맞았는데요. 한국해비타트에 따르면 815런과 3·1런을 통해 지금까지 후손 가정 21채가 완공됐고 10채가 추가로 건축 중이죠. 올해 오프라인 참가자 7000명도 모집 시작 며칠 만에 모두 찼습니다. 션은 15일 광복절의 의미를 담아 81.5㎞ 완주에 도전하죠.

기업과 일상 공간도 후손 지원에 연결됐습니다. 국가보훈부와 모나미가 출시한 ‘BP153 광복 81주년 에디션’의 판매 수익금 전액은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에 기부되는데요. 포토이즘은 14일부터 17일까지 데니 태극기와 진관사 태극기 등을 활용한 광복절 한정 프레임을 운영하고 수익금 일부를 기부합니다. 볼펜을 사고 사진을 찍는 일상의 행동을 보훈과 연결한 시도인데요.

올해 ‘후손 이야기’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후손을 행사에 초청하는 데서 나아가, 이들의 주거환경과 생활 여건까지 지원의 범위가 넓어진 거죠.


(이투데이DB)
(이투데이DB)


2026년 광복절은 분명 ‘후손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상의 이름으로 사람을 서열화하는 ‘혈통의 시간’이 돼서는 안 되는데요. 친일의 책임도, 독립운동의 공적도 유전자처럼 후손에게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손이 조상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는데요. 불편한 기록을 감출지 확인해 밝힐지, 물려받은 이름을 개인의 명예로 소비할지 사회의 기억으로 남길지는 후손의 몫이죠.

사회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한데요. 친일 행적은 명단 등재 여부만으로 판단을 끝내지 않고 남아 있는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 역시 기념일에 이름을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후손의 현실을 살피는 데까지 이어져야 하는데요.

무엇을 물려받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물려받은 역사를 어떻게 마주하느냐죠. 81년이 지난 광복절,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이름들이 우리에게 묻는 물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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