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부임했을 때 가상자산 업계는 환호했다. 드디어 업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정부에, 그것도 핵심 참모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 실장을 임명한 이재명 대통령도 공약집에서 가상자산 업계 활성화를 천명했다. 업계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가상자산 법제화부터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참고로 법제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김 실장은 줄곧 관료로 경력을 쌓아왔지만, 직전 소속은 블록체인 벤처캐피탈(VC) 해시드의 싱크탱크인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였다. 이동 배경을 둘러싼 갖가지 후문은 차치하고 김 실장은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했다. 학구적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게 양질의 리서치를 발간했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여러 가상자산 담론을 논했다.
김 실장은 정책실장 임명 후에도 SNS에서 자신을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규정하며 게시물 업로드를 이어갔다. 문제는 그 SNS에서 시작됐다. 김 실장이 5월 11일 SNS에서 ‘국민배당금(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세수 환원)’을 언급하고 언론이 이를 재생산하면서 사람들은 김용범이라는 이름 석 자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뇌관은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서 터졌다. 김 실장이 레버리지 ETF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그의 이름은 정치권과 투자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라임 사태의 제도적 배경으로 지목된 2015년 사모펀드 규제 완화 전후로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과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냈다는 이력까지 소환되면서 '한 번 더' 자본시장을 흔든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해시드 행사에서 김 실장을 처음 만난 날,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프레임만 잘 설계하면 한국은 디지털 질서를 수출하는 디지털 G2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주창했다. 정책실장에 부임하고 레버리지 ETF가 화두로 떠오른 뒤 행적을 좇기 위해 챙겨본 브리핑 영상에서도 그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이런저런 비전을 이야기했다. 화면 속 그는 행사장에서 직접 봤을 때와 다름없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연단에 서서 비전을 말했지만, 사람만 그대로였을 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자리가 달라지면서 메시지가 지닌 무게도, 그에 따른 책임도 커졌다. 직전까지는 사기업 연구소장의 책임만 졌다면 이제는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기획재정부 제1차관까지 지냈던 인물인 만큼 그 책임의 경중은 실감하고 있을 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