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물실호기(勿失好機)’ 한국 경제

입력 2026-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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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주도한 수출 폭발적 성장
전통 주력산업 구조조정 재촉하고
AI 전환 가속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불과 1~2년 전만 해도 ‘피크 코리아’ 담론이 팽배했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023~2025년 중 각각 1.5%, 2.2%, 1.1%에 머물러 평상시 기준 사상 최저수준을 기록하였다. 급속한 고령화와 세계 최저 출산율, 생산성 향상의 추세적 둔화, 중국 제조업의 추격을 넘어선 추월 등이 겹치며 우리경제가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게 높아졌다.

그런데 금년 들어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먼저,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상반기 중 상품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8.3% 증가했다. 반도체가 160.8% 늘어 증가세를 주도하였고, 정보통신기기(100.8%)와 석유제품(37.9%), 선박(19.9%) 등도 호조를 보였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국내투자와 소비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올 1분기·2분기 GDP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8%, 3.7%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 수출가격 상승 덕에 국내총소득(GDI)은 13.2%, 15.6%나 늘었다.

그러나, 이 숫자를 냉정히 읽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좋아졌다기보다 외부환경의 변화로 인해 한국 제조 역량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미·중 패권경쟁 속에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주요 공급망과 자국 시장에서 중국을 밀어내는 사이 한국이 그 공백의 상당 부분을 점유한 한편, 세계적 AI 붐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전자·전기기기 업종이 슈퍼 호황을 맞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제조업이 가공스럽게 발전하고 있고 미국 일본 등의 제조업 회생 노력 또한 거세다는 점, 현 AI 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또 하나 국내 기업과 개인의 자금이 계속 해외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우려스럽다. 제조업의 고부가가치 신사업모델 창출 부족으로 최근의 설비투자 회복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불투명한 가운데, 유수 대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을 위한 해외 직접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한·미 금리 역전의 장기화 등으로 개인들의 해외 증권투자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모처럼의 기회를 국내투자 확대와 지속적 경제성장의 전기로 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전통 주력산업의 과감한 구조조정과 고도화다. 국제경쟁력이 낮아진 철강·석유화학·가전 등은 시장의 자율조정만 기대하지 말고,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이 그랬듯 핵심 산업의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키워 국내 완결형 공급망 또는 산업생태계를 갖추고, 범용품 수출 대신 고부가가치 특화제품 수출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공급망 구성 기업 간, 특히 중소·대기업 간 상생의 생태계 형성이 필수적이다.

둘째, 우리 경제의 디지털 전환 또는 AI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제조 역량과 AI를 결합한 ‘피지컬 AI’ 생태계를 발빠르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에 필요한 반도체·송배전기기 제조 역량과 함께, AI가 물리적 산업으로 확장되는 데 필요한 업종별 제조 데이터를 두루 갖춘 유수의 서방 진영 국가다.

이 강점을 살려 데이터센터 등 AI·로봇 인프라를 구축해 제조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고, 신성장산업도 함께 키워야 한다.

서비스업의 AI 전환 기반 개인맞춤화·고부가가치화도 못지않게 시급하다. 금융은 개인의 소비·소득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자산관리로, 의료는 개인별 건강 데이터 기반 맞춤형 정밀의료와 디지털 치료제로, 유통·물류는 채널을 넘나드는 데이터 통합과 고객맞춤화로 나아가야 한다. 뒤처져 있는 서비스업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AI 붐이 만든 성장의 온기가 국민 다수에게까지 퍼지지 못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화 국제화 로드맵이 금융산업 나아가 서비스업 전반의 선진화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화 국제화가 그동안 국내 시장에 안주해온 금융기관들이 글로벌하게 자금을 조달·운용하는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 역량이 쌓일 때 국내 자본시장의 매력도가 높아지고, 밖으로만 향하던 기업과 개인의 자금도 자연스럽게 국내로 돌아올 것이다.

외부환경 변화로 열린 기회의 창은 외부환경 변화와 더불어 속절없이 닫힐 수 있다. 한국은 미·중 간 디커플링 및 AI 반도체 붐이 벌어준 시간을 국내 경제의 구조조정 및 디지털·AI 전환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이 향후 10여 년 한국 경제의 성쇠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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