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트라우마' 벗은 한국은행, 13년 간 멈췄던 금 투자 늘린다 [종합]

입력 2026-08-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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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삼성금거래소에서 관계자가 골드바를 들어보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서울 종로구 삼성금거래소에서 관계자가 골드바를 들어보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금 매입 재개에 나선다. 올해 2분기 해외에 상장된 '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에 나선 데 이어 본격적으로 실물 금 매입을 예고한 것이다. 한은은 2013년 이후 금 보유분 확대에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금값 상승과 해외 중앙은행 대비 낮은 금 비중 등을 감안해 금 매입 확대 기조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한은이 운용하는 외환보유액 포트폴리오 역시 변화 수순을 맞게 됐다.

한은 "해외 수출용 금 매입" 선언⋯협의대량매매로 시장 영향 최소화

3일 한은은 국내 생산 금 매입의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지난달 20일 금 생산업체인 LS MnM, 한국거래소(KRX), 한국예탁결제원(KSD) 등 유관기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력체계 구축은 한은이 국내 금시장(KRX 금시장)의 거래 인프라를 활용해 국내 금 생산업체의 해외 수출 예정 물량을 국제 금 시세 기준으로 매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생산 금 거래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유관기관 간 협약식이 열린 행사장에서 관계자들이 공식적으로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국내 생산 금 거래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유관기관 간 협약식이 열린 행사장에서 관계자들이 공식적으로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이번 결정에 따라 한은은 금 생산업체의 해외 수출 수요 발생 시 업체로부터 거래 가능 물량과 희망 시기를 제시받고, 금 운용계획과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거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은의 금 매입에 따른 시장 가격 충격에 대해선 KRX 금시장의 장내 일반매매가 아닌 협의대량매매 방식을 활용하는 만큼 장중 시장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매입 시기나 규모, 중장기 비중 목표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 KSD 인프라 구축 작업이 진행 중인 만큼 실제 매입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희섭 한은 외자운용원장은 "금은 이자나 배당 수익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금과 같은 금리 인상기에 불리하다. 과거 주식에 비해서도 수익률이 떨어지는 자산인 것도 맞다"면서 "그럼에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된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관심이 한은 내에서도 높아졌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이어 "이번 결정을 하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한은의 금 보유량이 타국 대비 낮은 상황이라는 점, 최근 금 가격이 하락해 매입 부담이 줄어든 점, 국내 생산금 매입을 통해 매입 경로를 다양화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이번 금 매입 결정을 통해 국내 생산 금 매입 채널을 새롭게 확보해 매입 경로를 다변화하고, 중장기적인금 보유 비중 확대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금 보관장소를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 분산하고 외환보유액을 확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현재 보유 금 전부를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에 예치하고 있다. 정 원장은 "금은 자산 매각에 용이한 데다 국내에 보관 시 비용이 들지 않는다"며 "국내 보관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 이점도 있어 타국에서도 금 보유분을 분산 보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고착화된 외환 포트폴리오 변화 예고⋯고점 매입 트라우마 극복 '눈길'

한은의 금 추가 매입 결정에 따라 10년 넘도록 고착화돼 있던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비중도 변화를 맞게 됐다. 국내 외환보유액은 유가증권, 예치금, 특별인출권(SDR), 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유가증권이 전체의 약 8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금은 13년 째 47억9000만달러(매입가 기준)로 1.1%에 머물고 있다. 세계금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의 금 보유량은 104톤(t)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 중 41위(IMFㆍECB 포함 순위)다. 한국 외환보유액 순위가 전세계 10위권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격차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금 보유량을 늘리면서 한은의 금 보유 순위는 매년 하락 중이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주요국 금 보유 순위를 살펴보면 미국이 8133.5t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고, 독일(3350.3t), 이탈리아(2451.9t), 프랑스(2437.0t), 러시아(2326.5t) 등이 뒤를 이었다. 중국의 금 보유량은 2305.4t으로 세계 6위 수준이었다. 최근 1년 간으로 한정해 보면 폴란드가 연 95.1t으로 세계 중앙은행 중 가장 많은 금을 사들였다. 카자흐스탄(49.0t), 브라질(42.8t)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의 금 비중 변화가 가장 가팔랐던 시기는 2011~2013년이다. 2010년 취임한 김중수 당시 한은 총재는 2011년부터 3년 동안 금 90t을 매입했다. 역대 한은 총재들이 손실 위험 때문에 금 투자를 꺼린 것과 달리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자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려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금값이 하락하면서 김 총재의 결정은 국회 등에서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럼에도 당시 선택으로 2011년 1월 전체 외화보유액 중 0.03%에 그쳤던 금 비중은 2013년 12월 1.4%까지 뛰었다.

정 원장은 "향후 한은의 금 매입 방향은 가격적인 면보다 중장기적인 필요에 의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국내 생산 금 매입 기반의 안정적 정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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